

소설가 구보씨가 걷던 경성길…식민지 수도가 가졌던 환상은 [북적book적]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속 주인공 구보는 하루 종일 서울 도심을 걸었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식민지로 전락한 암울한 경성을 배회했다. 근대화의 물결 속에 도시의 모습은 하루가 다르게 확확 바뀌었다. 일제 강점기 지식인이 차곡차곡 쌓은 좌절과는 분명 다른 모양이었다. 그래서 구보는 갈 곳 없이 헤맸다. 강제적이고 갑작스러웠던 식민지 통치에 적응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지금의 서울 곳곳에서 그는 표류할 수밖에 없었다. 신간 ‘시간을 걷다, 모던 서울’은 우리가 부러 들춰내고 싶지 않은 과거를 기어코 끄집어 낸다. 대표적으로 식민, 분단, 이산(離散)의 기억이다. 집필을 위해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의 젊은 연구진들과 교수들은 켜켜이 쌓인 한국의 아픈 기억 17편을 찾아내 오늘날의 사진과 함께 책에 담았다. 구보가 걷던 경로도 그중 하나다. 구보는 1934년 어느 날 정오 무렵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2024.08.22 11:0040여년의 공직생활, 그리고 3번의 사표…‘킹만수’가 보는 위기의 원인은? [북적book적]
[헤럴드경제=신소연 기자]소설가를 꿈꿨던 시골 소년, 하지만 예기치 않게 공무원이 됐고, 40여 년의 공직 생활 동안 세 번이나 사표를 써야 했다. 경제개발 시기부터 IMF(국제통화기금) 사태,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한국 경제 최대의 격변기를 겪었던 그는 아시아 외환위기 때는 재정경제부 차관이었고, 금융위기 땐 기획재정부 장관이었다. ‘킹만수’, ‘강고집’으로 유명한 강만수 전 장관의 이야기다. 강 전 장관은 한국 경제의 고비마다 현장에 있었던 경제정책 입안자로서 경험을 한 권의 책에 담았다. 그의 신간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도전실록’은 땀과 눈물로 얼룩진 공직생활의 비망록이자 치열했던 현장에서 겪은 실전 경제학이다. 저자가 지난 2005년과 2015년에 각각 출간했던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과 ‘현장에서 본 경제위기 대응실록’을 합쳐 정리한 것으로 무려 748쪽이
2024.08.22 10:46“미국에 붙는 게 현명”…신냉전 시대 ‘새우’의 생존법[북적book적]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수컷 바다코끼리 두 마리가 해변에서 서로 우두머리가 되기 위해 힘싸움을 벌인다. 놈들이 육중한 몸둥이를 부딪히며 포효하자 체구가 작은 암컷과 새끼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황급히 자리를 피한다. 태어나지 얼마 되지 않은 한 어린 새끼도 엉거주춤 피난행렬을 따라 나섰지만, 놈의 여물지 않은 지느러미는 너무 느렸다. 300kg이 넘는 수컷의 뒷걸음질에 그대로 짓눌린 새끼는 입에서 흰 액체를 콸콸 쏟아내면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자연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 같지만, 어디서 본 듯 기시감이 든다. 바다코끼리의 힘겨루기가 마치 현재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패권 다툼과 닮아 있어서다. 국제 정치외교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이자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부소장을 역임한 로빈 니블렛은 신간 ‘신냉전’을 통해 양국이 벌이는 힘의 논리를 동물의 세계에 빗대 담담하게 그려냈다. 또 양국의 틈바구니 안에서 한국과 일본, 호주, 유럽은 각각 어떻게 처신해야 하
2024.08.22 10:09아니, 진짜 문제는 플라스틱이 아니야 [북적book적]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한 여성 해양생물학자가 어쩔 줄 몰라하는 바다거북의 코에서 조심스럽게 빨대를 끄집어내는 영상은 단기간 조회수 1억100만회를 기록했다. 그는 시뻘건 피가 뚝뚝 떨어지는 기다란 플라스틱 빨대를 카메라 가까이 비추는데, 이 장면은 시청자들에게 그 자체로 강력한 잔상을 남겼다. 아니나 다를까.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젠켄베르스 자연사박물관이 방문자들에게 가장 끔찍한 환경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묻자 가장 많은 사람들이 ‘플라스틱 쓰레기’라고 답했다. 어디서든 보고 접하는 플라스틱 문제는 다른 환경 관련 주제들에 비해 사람들의 머릿속에 더 분명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생물학자인 카트린 뵈닝게제와 저널리스트 프리데리케 바우어는 신간 ‘종의 소멸’에서 생물다양성을 가장 많이 파괴하는 주요 원인으로 ‘무분별한 토양 이용’과 ‘과도한 동식물 이용’을 꼽는다. 플라스틱이
2024.08.21 10:52‘겁나 험한 게’ 소설 속에도…AI의 시대, 우리는 무속에 더 끌린다 [북적book적]
[헤럴드경제=신소연 기자]“뭐가 나왔다고 거기서. 겁나 험한 게.” 무당 화림(김고은 분)은 이장한 묘지터에서 첩장(묫자리에 관이 중첩돼 묻혀 있는 것)된 관이 열린 것을 보고 이같이 읊조린다. 죽은 사람을 담은 관에 뭐가 나왔을까 싶지만 무당이나 귀신, 악령 등의 이야기를 한 번쯤 들어본 사람이라면 단 번에 이해한다. 이 장면은 경제활동인구의 3명 중 1명이 관람한 영화 ‘파묘’의 일부다. 올초 천만 관객을 동원한 ‘파묘’를 필두로 무속이나 초자연적 현상이 대중문화의 단골 소재로 등장했다. 특히 독자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여름시즌 공포소설에도 호러나 SF(Sceince Fiction) 대신 무속 소재의 오컬트가 자리를 잡았다. AI(인공지능)가 일상이 된 시대, 독자들은 오히려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초자연적 현상에 끌리는 모양새다. 신하루 작가의 신작 ‘아무도 나를 위해 태어나지 않는다’에
2024.08.08 14:08직업이란 가면…‘우물 안’에서 벗어나는 방법[북적book적]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나를 짧은 시간에 소개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명함을 건네는 것이다. 명함에는 어느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는 지는 물론, 회사 내 나의 위치가 적혀있다. 명함을 받은 상대는 거기에 기재된 직급으로 나를 부르면 된다. 현대사회에서 손바닥보다 작은 명함 한 장은 가장 규격화된 자기 소개 방식이다. 이런 상황에 익숙해지면, 명함이 없을 때 나를 설명할 길을 잃어버린다. 명함이 없는 삶, 이것은 과연 제대로 된 인생이라 할 수 있는가. SK커뮤니케이션즈 인터넷미디어센터장을 거쳐 오가닉미디어랩을 설립한 윤지영은 신간 ‘WHY-돈, 직업, 시간 그리고 존재를 묻다’에서 “직업의 무덤 위에서 잃어버린 영혼을 되찾아올 질문”을 해보라 제언한다. 저자에 따르면, 여전히 직업은 개인에게 경제적 토대와 사회적 실현을 이루기 위한 필수적인 수단이다. 선택의 순간부터 직업은 자신의 정체성이 되고, 타인에게 나를 설명할 수 있는
2024.08.08 10:27우리 아이의 '유리멘탈' 알고보니 스마트폰 탓[북적book적]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똑같은 춤을 ‘챌린지 댄스’라며 추고 찍어 올리는 소녀들. ‘너도 #ADHD있어? 나도 #정신과 다녀’ 식으로 각자의 정신질환을 전시하는 행태. ‘틱톡(Tiktok)’과 ‘인스타그램’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콘텐츠다. 동의하는가. 그렇다면 당장 자녀의 스마트폰을 빼앗고, 그 안에 있는 수많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용을 금지시켜라. 그래야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의 비극이 끝난다. 정치외교 전문 매체 ‘포린폴리시’가 세계의 100대 사상가로 꼽는 조너선 하이트 뉴욕대학교 스턴경영대학원 교수는 신간 ‘불안 세대’에서 전세계적으로 2010년대에 청소년기에 진입한 아이들이 디지털 기기의 남용으로 그 어떤 세대보다 불안과 우울에 시달리고 있다고 분석한다. 저자는 2000년대와 2010년대는 둘 사이를 확연하
2024.08.08 10:03국가 대결은 없다…‘서울 vs 도쿄’ 도시 경쟁만 있을 뿐[북적book적]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과거엔 국가가 있고 그 다음에 도시가 있었다. ‘도시의 시대’가 된 지금은 도시가 국가를 앞선다. 자연스레 어느 분야든 국가 간 경쟁이 아니라 도시 간 경쟁이 치러진다. ‘1913 송정역시장(광주)’와 ‘유네스코 창의도시’ 가입 추진 등 도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최현희는 신간 ‘사랑받는 도시의 선택’에서 “도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문화예술이 필수적이며, 도시 각자는 가지고 있는 고유의 자산을 더 드러내야 한다”고 제언한다. 부동의 글로벌 도시 1~3위인 뉴욕과 런던, 파리 모두 문화예술이 도시의 독보적 경쟁력을 일궈 준 곳임을 강조한다. 도시에서의 삶은 생존만으로 충족되지 않는다. 항상 사람들은 그 이상의 것, 즉 문화예술 활동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영국의 싱크탱크 센터포시티의 연구에 따르면, 25~34세 청년층은 거주지를 결
2024.08.02 10:54“확실하다고? 글쎄” 역사가 말을 ‘아마도’라고 들어야 하는 이유 [북적book적]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위엄’이 생명인 역사학자가 이렇게나 솔직할 수 있을까. 그는 고백한다. 역사학자도 틀릴 수 있다고. 책 첫 장을 넘기자마자 한자어를 오역해 낭패를 본 아찔한 자신의 실수담이 가감없이 펼쳐진다. 그는 원나라 호남성의 말을 인용하는 과정에서 ‘훼졸(毁卒·상을 치르다 몸이 상해서 죽었다)’이라는 의미를 잘못 이해했다. ‘세상을 떠났다’는 표현을 빠뜨린 채로 저술해 책을 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나부터 잘하자”라며 스스로 과오를 성찰하는 그는 한국의 조선사 연구자인 오항녕 전주대 교수다. 그는 신간 ‘역사의 오류를 읽는 방법’에서 존경받는 동서고금의 역사가들이 한 실수를 살펴보며 역사를 색다른 관점에서 살펴본다. 저자는 “나는 예외겠지, 하는 생각이 바로 오류의 출발”이라며 “지금 우리는 논쟁이나
2024.07.24 15:22“더운 나라는 게을러서 저 모양”…불평등의 진짜 원인은 바로 ‘OO’ [북적book적]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G7(주요 7개국·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캐나다)과 유럽연합 등 서구권 국가들은 언제부터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인식되기 시작된 걸까. 유럽인과 미국인은 근면한 국민성과 창의적인 발상을 가진,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거주민들보다 더 우월한 존재인 걸까. 영국왕립예술학회 토토사이트이자 런던정치경제대학교 국제불평등연구소의 방문 선임연구원인 제이슨 히켈은 신간 ‘격차(The Divide)’에서 ‘더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게을러서, 치열하게 노력하지 않아서 발전하지 못했다’는 식으로 후진국의 열등함을 비난하는 구태를 격파한다. 저자는 “글로벌 격차의 문제는 부유한 국가와 가난한 국가가 각각 가지고 있는 내부적 특성의 문제라기보다, 이 두 지역이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가의 문제”라고 일갈한다. 저자는 ‘불평등 격차는 분명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이는
2024.07.24 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