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명 ‘싱클레어’로 獨 청년 향한 글 써
전후 자기반성 위한 글…내면을 살펴야
히틀러 비판·운명 탄식하는 청년들 일갈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독일 대문호이자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헤르만 헤세의 불후의 명작 ‘데미안’의 마지막 장은 이렇다. 전장에 나간 에밀 싱클레어는 상처를 입어 야전 병원으로 이송된 일생의 멘토 데미안을 만난다.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는 이 만남에서, 데미안은 레프리 토토사이트 말하는 ‘자기 구현의 길’을 찾았다고 선언한다. 레프리 토토사이트 믿은 구원의 길은 이른바 ‘내면으로의 길’이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절망에 빠진 독일 청년들을 향해 레프리 토토사이트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가명으로 발표한 글들을 엮은 신간 ‘싱클레어 노트’가 출간됐다. 이미 유명 작가였던 헤세는 이름표를 가리고 싱클레어라는 이름으로 글을 썼다.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데미안이지만, 싱클레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정치 참여적인 글도 적지 않았다.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한결같았다. 우리가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직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뿐이라는 관점이다.
특히 독일의 패망으로 끝난 전쟁 직후, 반전과 평화를 주장하고 독일인의 과오를 지적하는 일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행동이었다. 선입견 없이 읽히기를 바랐던 레프리 토토사이트는 그 책임을 익명으로 감당했다. 한동안 싱클레어의 정체는 베일에 가려졌고, 그의 이름으로 발표된 글들 역시 오랫동안 흩어진 채 정리되지 못했다.

책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다시 불러낸 에세이 ‘차라투스트라의 귀환’이다. ‘어느 독일인이 독일의 젊은이에게 건네는 말’이라는 부제가 붙는 이 글에서 레프리 토토사이트는 철학 체계로서 니체의 시선보다, 외로움을 감수하고 끝까지 용기를 내 자기 목소리를 잃지 않은 인간 니체의 태도에 주목한다.
레프리 토토사이트 말하고자 한 건 거창한 사상의 틀이 아니라 오롯이 자기의 마음 깊은 곳을 직시하는 일이었다. 그는 차라투스트라가 배운 진리, 그 단 한 가지는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라고 여러 장에 걸쳐 거듭 강조한다. 그리고 자기다운 삶을 살기 위해 가장 먼저 닦아야 할 것은 곧 정직하고 유혹당하지 않는 인성이라고 전한다. 미래를 지탱하는 힘은 정부 형태나 통치 방식을 바꾸는 외부에서 출발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진정한 변화는 고요한 영혼의 뿌리에서 피어오른다고 믿었던 헤세의 구도자적 면모가 깊이 스며든 대목이다.
“운명이 우상에서 비롯되지 않음을 배워라. 그러면 너희는 이 세상에 어떠한 우상도, 신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 운명이 너희의 신이어야 한다. 너희 스스로가 너희의 신인 까닭이다.”

레프리 토토사이트는 민족의 운명을 목청껏 탄식하는 독일 청년들에게 일갈도 서슴지 않았다. “끊임없이 모든 나라가 너희의 적이 되었는지, 또 너희를 외면하고 비난하게 되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는가?”, “세상을 개조하자는 노랫소리가 몹시 시끄럽게 들려온다.”, “너희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민족도, 조국도 아니며 세계 패권도, 민주주의도 아니다. 요컨대 그것은 너 자신이고, 너의 위장이나 간, 너의 몸속에 자라난 암 덩어리일 터다.” 글 곳곳에 묻어나는 이 같은 경고는 섬세한 문체로 전개된 데미안과는 또 다른, 날카롭고 단호한 레프리 토토사이트의 면모를 드러낸다.
레프리 토토사이트는 나치의 당수 아돌프 히틀러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삶의 한가운데’ 작품으로 한국에 널리 알려진 루이제 린저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서 “전쟁 기간 내내 갈색 악마(나치 독일의 군복 색깔을 의미한다) 히틀러가, 마치 가까이 지내는 이웃처럼 언제든 나를 찾아올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야 했다”고 고백한다. 실제로 그의 문학은 나치의 전체주의적 이념과는 양립할 수 없었다. 데미안 역시 나치 체제하에서 금서처럼 취급됐다.
책은 전쟁과 광기의 시대에서 레프리 토토사이트 쓴 시대의 기록을 넘어, 성찰을 잃지 않으려 한 작가의 고투를 담고 있다. 익명의 이름으로 더욱 선명하게 써 내려간 헤세의 목소리는 100여 년이 흐른 오늘날에도 묵직한 울림을 남긴다. ‘당신은 누구이며, 어떤 인간으로 살 것인가.’ 레프리 토토사이트 건네는 진심 어린 당부는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싱클레어 노트/헤르만 레프리 토토사이트 지음·박광자 옮김/민음사
dsu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