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루소, 노년의 문턱서 선택한 화가의 길

‘무모하다’ 손가락질해도 꿋꿋이 작품 활동

인생의 반환점, 필요한 건 용기와 도전·신념

앙리 루소의 대표작 ‘꿈’(1910). 루소가 사망하던 해에 그린 그림. 그가 그린 정글 그림 중 몽환적인 느낌으로 유명하다. [뉴욕 현대미술관]
앙리 루소의 대표작 ‘꿈’(1910). 루소가 사망하던 해에 그린 그림. 그가 그린 정글 그림 중 몽환적인 느낌으로 유명하다. [뉴욕 현대미술관]

[bet365 토토사이트경제=이정아 기자]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고, 정식 미술 교육도 받은 적 없는 이름 없는 말단 세관원이었던 앙리 루소. 그는 마흔아홉에 돌연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평균 수명이 지금보다 훨씬 짧았던 19세기 말, 이미 노년의 문턱에 들어선 나이였다.

루소는 두려움 대신 붓을 들었다. 사람들은 그를 비웃었고, 비평가들은 그의 그림에 대한 평가조차 꺼렸다. “6살짜리 아이가 혀로 그린 그림”이라는 조롱이 그를 따라다녔다. 그러나 루소는 자신을 믿었다. 온갖 악평과 외면에도 흔들리지 않았고, 도망치지도 않았다. 그저 묵묵히 캔버스를 채워나갔다.

마침내 파블로 피카소가 원시적 풍경과 특유의 감성이 녹아든 그의 그림 앞에 멈춰 섰다. 남의 작품을 좀처럼 칭찬하지 않던 피카소가 그를 위한 파티까지 열어줬을 정도로 열광한 것. 독일 비평가인 빌헬름 우데는 루소에 대한 첫 논문을 발표했고, 미술사에 루소라는 이름이 새겨졌다. ‘초현실주의의 아버지’라는 수식어도 그의 것이 됐다.

신간 ‘앙리 루소가 쏘아올린 공’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 찾아오는 인생의 반환점을 말한다. 무엇을 위해 달려왔는지 헷갈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한 시기. 저자는 공허함 속에 빠지게 되는 이 중년의 진공 상태를 루소의 생애를 통해 들여다본다.

가난한 함석공의 아들로 태어나 20년 이상 세관원으로 일한 루소는, 오직 미술에 대한 열정 하나로 인생의 방향을 바꿨다. 누구보다 늦은 출발,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시작이었지만 그는 ‘이 길이 맞다’는 확고한 믿음으로 타인의 비웃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 책은 그 확신의 힘을 일곱 가지 키워드로 풀어낸다. 용기, 도전, 창조, 긍정, 신념, 자기애, 예술적 순수성. 이 단어들은 루소의 미덕을 넘어, 우리 각자가 삶을 다시 그려나갈 실질적인 나침반이 된다.

루소의 삶이 특별한 건 단지 작품 활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60대에 접어든 그는 다시 사랑에 빠졌다. 전 재산을 내놓겠다는 서약과 함께 청혼했지만, 차갑게 거절당bet365 토토사이트. 그래도 물러서지 않았다. 마치 첫사랑에 빠진 청년처럼 온 마음을 다bet365 토토사이트. 끝내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지만, 그 무모한 사랑은 뜨겁고 순수해 한 편의 시처럼 남았다. “나이가 들었다고 왜 사랑을 포기해야 해?” 루소의 이 한마디는 나이와 감정 사이에 그어진 선명한 선을 조용히 지워버린다.

앙리 루소의 대표작 ‘잠자는 집시’(1897). [뉴욕 현대미술관]
앙리 루소의 대표작 ‘잠자는 집시’(1897). [뉴욕 현대미술관]

마흔 중반을 넘긴 나이에 미술 이론 공부를 결심해 대학원에 진학한 저자는 루소의 그림 30점을 직접 골라 설명도 덧붙였다. 각 그림이 그려진 배경, 화폭에 담긴 상징, 그 특별한 이유를 담았다. 미술사적 평가를 넘어 한 인간의 인생 서사로서 그림을 소개하는 저자의 해설은 독자를 루소의 세계에 빠져들게 한다.

저자는 “루소의 그림 ‘잠자는 집시’를 만났을 당시 나는 루소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다”며 “그런데 그림을 보는 순간, 한순간에 그림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의 삶을 조사하고 관련 자료를 찾아보는 시간이 길어지자 루소의 그림을 만난 것이 마치 운명의 끌림처럼 느껴졌다”고 bet365 토토사이트.

책은 말한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너무 늦었다는 생각은 스스로 만든 틀일 뿐이라고. 중요한 건 언제가 아니라, 지금부터라는 것이다. 루소는 그것을 삶으로 증명bet365 토토사이트.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은 사람, 다시 사랑하고 싶은 사람, 막연한 두려움에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루소가 남긴 다정하고 단단한 흔적을 만날 수 있다. 마흔아홉이라는 인생의 반환점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저자의 메시지가 어쩌면 지금 당신에게 가장 절실할지도 모른다.

앙리 루소가 쏘아올린 공: 무언가를 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란 없다!/김지명 지음/Bmk


dsu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