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 아르테미시아 토토사이트 마루한
영원한 승리자

편집자 주
후암동 미술관은 무한한 디지털 공간에 걸맞은 초장편 문화예술 스토리텔링 연재물의 ‘원조 맛집’입니다. ■기자 구독■을 누르시면 매 주말 풍성한 예술 이야기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기사는 역사적 사실 기반에 일부 상상력을 더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쓰였습니다.
※이번 기사는 평소보다 약간 더 깁니다. 소중한 시간 내주시는 독자분들에게 감사와 존경의 인사를 전합니다. 행복한 연휴 보내세요.
성폭행범의 약속,
결혼반지의 실체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
“당신이 내게 약속한
결혼반지가 이건가 보죠?”
1612년, 로마의 법정. 아르테미시아 토토사이트 마루한가 비웃었다. 고문 탓에 멍들어가는 제 손가락을 보면서였다. 그녀의 조소섞인 물음, 이는 맞상대로 있는 아고스티노 타시를 향한 조롱이었다. 타시는 그녀에 대한 기망자이자 성폭행범이었다.
이렇게까지 공방이 길어질지는 몰랐다. 토토사이트 마루한는 분명 피해자였다. 그런 그녀는, 명백한 가해자 타시와 맞서고도 좀처럼 궁지로 몰지 못했다.
당장 지금도 그랬다. 외려 고문을 받고 있는 이는 토토사이트 마루한였다.
억센 끈을 손가락에 감은 뒤 잡아당기는 ‘시빌레’(sibille)가 그 방식이었다. 끈을 조이며 고통을 주고, 심하면 뼈까지 으스러뜨릴 수 있는 일이었다. 이는 당시 소송 제기자가 자기주장을 관철할 수 있는 최후 수단이었다. 이런 상황이 펼쳐질 만큼, 되레 그녀가 구석으로 몰린 모습이었다. 이때 그녀 나이는 열아홉이었다.
이런 가운데, 토토사이트 마루한는 줄이 팽팽해질수록 결기만 내보였다.
토토사이트 마루한가 타시를 향해 결혼반지를 언급한 일. 끈에 묶인 모양대로 푸르스름해지는 자기 손마디에 빗대 뱉은 비아냥이었다.

“…기왕 이렇게 됐으니,
내가 널 아내로 맞아들이마.”
젠틸레스키는 타시가 자신을 유린한 과거 그날에 한 약속을 새기고 있었다. 그 말을 핑계로 몇 번이나 더 몸을 탐했던 것 또한 기억하고 있었다.
“말해보세요. 당신이 약속했던 반지가 이 따위 멍 자국이냐고요!” 토토사이트 마루한는 타시의 시치미를 떼는 면상(面相)을 일그러뜨리고 싶었다. 그녀는 곧 판사와 배심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억울함을, 여전히 밀려드는 아픔을 억누르며 또박또박 말했다. “타시. 저자가, 결혼을 빌미로 절 범한 게 맞다고요!”라고.
토토사이트 마루한는 이쯤부터 본인 처지를 성녀 캐서린에 투영(投影)하게 됐을까.
캐서린. 그녀는 3~4세기경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살았다고 전해지는 전설 속 여성이다. 캐서린은 신실한 자였다. 그런 그녀는 신앙을 알리려다 부당한 일을 겪었다. 그녀 또한 아무 잘못도 한 게 없었지만, 지금의 토토사이트 마루한처럼 본인이 벼랑 끝으로 몰려야 했다. 그 시절 캐서린에게 내려진 처분은 ‘가시 바퀴 고문’(몸 위로 못 박힌 바퀴를 굴리는 방식)형이었다.
그러나, 그녀 또한 참혹한 고통을 앞두고도 굴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바퀴가 돌아가려는 순간,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그녀를 짓눌러야 할 그게 갑자기 부서지고 만 것이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주변이 술렁였다. 정의, 그리고 기백이 일군 기적이었다.

훗날, 그러니까 토토사이트 마루한가 당장의 고문을 마친 후 가까운 미래.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캐서린 분장으로 분장한 자화상>을 그리게 된다.
그 안에는 캐서린 모습을 한 본인, 전리품처럼 든 바퀴가 등장한다. 노려보는 눈, 칼처럼 쥔 종려나무에선 살기까지 느껴진다.
토토사이트 마루한는 분명 타시에게 성폭행을 당했었다.
그것도 여러 번. 심지어 비열한 거짓말에 놀아나기도 해야 했다. 그런데 그녀의 경우에는, 대체 뭣 때문에 외려 그 위기에 놓였는가. 그런 억울한 일로 법정에 오고도 왜 되레 본인이 초강수를 둬야 하는 상황까지 몰렸는가. 무엇보다도, 이 이야기 또한 캐서린의 사례처럼 정의와 기백의 승리로 끝맺게 될 것인가.
<캐서린 분장을 한 자화상>이 그렇듯, 토토사이트 마루한는 본인의 파란만장한 모든 여정을 그림으로 남겼다. 즉, 그녀의 주요작을 따라가 보면 이야기의 시작과 끝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여성에게 쉽지 않은 시대,
‘놈’의 제안 받아들인 이유

토토사이트 마루한가 타시와 처음 마주한 건 1610년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토토사이트 마루한는 열일곱이었다. 타시는? 그녀보다 배 가까이 많은 서른두 살이었다. 타시는 그때부터 그녀에게 조금씩 접근한 것으로 전해진다.
토토사이트 마루한는 원래 타시를 그림 교사로 받아들였다.
타시는 왕궁의 주문 제작을 맡을 만큼 실력을 갖춘 자이긴 했었다. 또, 당시 여성의 몸으로는 누군가에게 미술을 배울 기회 자체부터도 흔치 않았다. “내가 원근법을 알려주지. 그리고…. ” 타시의 시선은 눅진했다. 이처럼 느낌이 좋지 않음에도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 건 이 때문이었다.
앞서 토토사이트 마루한는 토스카나 출신인 유명 화가 오라치오의 딸로 출생했다.
눈 뜬 곳은 로마.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건 근성, 그리고 미술 감각이었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직접 토토사이트 마루한를 가르쳤다. 그것부터도 파격적이었다. 여성에게는 종교와 집안일을 빼면 딱히 무엇도 지도하지 않는 때였다. 토토사이트 마루한는 비범했다. 곧 더는 아버지에게 흡수할 게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토토사이트 마루한의 회화 실력은)완숙의 경지에
들어 감히 필적할 만한 이가 없다.
오죽하면 아버지가 이런 글을 쓸 정도였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여전히 갈망이 있었다. 더 깊이 배우고 싶었다.
이쯤 찾아온 이가 문제의 그 남자, 타시였던 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친구이자 옛 동업자이기도 했다. 토토사이트 마루한가 타시의 ‘과외’ 제안에 응하고, 둘만이 화실에 있던 어느 날. 타시는 당연하다는 듯 그녀를 덮쳤다. 결혼 약속? 이는 만행 후 토토사이트 마루한가 죽일 듯 노려보자 못 이기는 척 한 말이었다. 당시 타시는 유부남이었다. 그럼에도 순결을 빼앗긴 토토사이트 마루한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런 시대였다. 그래서 이 남자를 믿어준 것이었다. 몸과 마음을 거듭 내준 것이었다.
타시는 진지하지 않았다.
또 한 번 마음껏 유린하고선 결혼 따위 시치미나 떼던 그날, 토토사이트 마루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토토사이트 마루한는 아버지를 불렀다. 타시, 저놈을 처녀성 강탈 혐의 등으로 고소할 것을 부탁했다. 당시 사회적 분위기로는 여성이 법적 절차를 생각한다는 일부터도 이례적이었다.

<수산나와 두 장로>. 토토사이트 마루한가 이 무렵에 그린 그림이었다.
수산나는 성서의 등장인물이다. 어느 날, 늙은 두 재판관이 수산나를 목격한다. 당시 그녀가 있던 곳은 정원. 하필 옷을 벗은 채 목욕을 하고 있었다. 두 재판관은 욕정에 눈이 먼다. 수산나에게 다가가 대뜸 관계를 요구한다. “응하지 않으면 ‘젊은 남자와 간통했다’는 죄를 만들어 고발하겠다”는 협박과 함께.
화폭 속 수산나는 질색하는 모습이다.
늙은 남자와 젊은 여자, 겁탈의 위험, 아울러 법정 공방 예고까지…. 토토사이트 마루한가 이 그림을 타시의 악행 전에 그렸는지, 후에 완성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시기야 어쨌건, 그녀의 삶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많다. 그런 점에서 더 유명해진 작품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토토사이트 마루한의 분노에 응했다. 그가 딸의 요청에 선뜻 응한 데는, 딸의 재능이 울분 따위에 잠식되지 않길 바란 이유도 있지 않았을까. 그 결과, 두 사람은 나란히 법정에 서게 된 것이었다.
고문·검사까지 받고 승소,
내려진 처분은 ‘솜방망이’

“저는 억울합니다.
저 계집이 먼저 유혹했단 말입니다!”
토토사이트 마루한에게 문란한 여자라는 인식을 씌운다. 내가 범하기 전부터도 처녀성은 없었다는 투로 이야기한다. 그렇게… 고소 자체가 성립(成立)할 수 없다는 식으로 이끈다. 이는 타시가 들고 온 수였다. 게다가, 그 논리는 의외로 먹혀들어가는 듯했다.
토토사이트 마루한가 몸을 던져 고문을 자처한 일.
타시의 이처럼 비열한 행보를 받아치기 위한 맞대응이었다. 토토사이트 마루한는 손가락이 끊어질 듯한 고통에도 뜻을 꺾지 않았다.
진실은 진실이야!
전설처럼 알려진 말에 따르면, 그녀는 이 말만 세 번쯤 외쳤다고 한다.
젠틸레스키는 직접 부인과 검사도 받았다.
이 또한 본인 몸이 깨끗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한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또 한 번 수치심에 젖어야 했다.
토토사이트 마루한와 타시는 7개월간 법정에서 다퉜다.
타시는 그사이 회유를 시도하는 한편 가짜 증인을 내세우는 행태도 보였다. 토토사이트 마루한는 밀리지 않았다. 고문도 견뎠고, 산부인과 검사 결과 또한 있는 그대로 나왔다. 토토사이트 마루한가 이겼다. 타시가 졌다. 하지만, 토토사이트 마루한는 통지서를 보고 허탈함을 느꼈다.
타시가 받은 처벌은 1년 형. 10대 소녀를 욕보이고, 심문 중 여러 여죄(가령 처제와의 간음 등)까지 밝혀졌는데도 고작 1년 형(기록에 따라선 더 가벼운 처벌이 이뤄졌다고도 한다)…. 이는 이겨도 이긴 것으로 볼 수 없었다.
본인을 유디트에 빗대고,
타시의 목을 베어버리다

여인이 칼을 쥐었다.
칼이 썰고 있는 건 남성의 목이다. 여인의 다른 손은 그의 머리털을 잡는다. 한쪽으로는 살을 베면서, 또 다른 쪽으로는 혈관을 뜯으며 최악의 고통을 안긴다. 두꺼운 어깨, 굵은 팔과 억센 손가락…. 오직 죽여버리겠다는 생각뿐, 여인에겐 일말의 망설임도 없어 보인다. 잘린 동맥에선 새빨간 피가 뿜어져 나온다.
여인 이름은 유디트.
유디트는 구약성서 외전(外典) 격인 ‘유디트서’에 나오는 이스라엘 여성이다. 그녀는 조국의 영웅이다. 아시리아 장수 홀로페르네스의 군대로부터 마을을 지키는 구원자다.
그녀의 행보는 이랬다. 먼저 시종과 함께 맨몸으로 적진에 투항한다. 교태로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한다. 그렇게 한 침실을 쓴 후, 잠든 그의 목을 순식간에 베어버린다. 허무하게 우두머리를 잃은 군은? 전의를 잃고 퇴각하고 만다.

젠틸레스키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는 이 일화 중 결정적 순간을 그린다.
그런데, 그녀의 그림 속 유디트는 대부분의 다른 화가가 그린 유디트와 다소 다른 모습을 보인다. 가령 선배 화가 격인 카라바조의 같은 그림을 보라. 그는 유디트를 가녀린 여인으로 묘사했다. 피부는 새하얗다. 목은 가늘고, 팔뚝도 얇다. 살을 베는 표정과 자세에선 껄끄러움을 느낄 수 있다. 이게 그 무렵 보통의 유디트 묘사였다.
그렇다면 토토사이트 마루한는 왜?
짐작할 수도 있겠지만, 토토사이트 마루한는 ‘그냥’ 유디트를 그리지 않았다. 앞서 스스로를 성녀 캐서린에게 빗댔듯, 이번에는 본인의 심리를 유디트에게 비춰 표현한 것이었다. 이 악문 채 죽이고 있는 자는? 당연히 타시였다.
토토사이트 마루한는 1614년께부터 그녀의 고향 로마가 아닌 피렌체에서 이 그림을 작업했다.
토토사이트 마루한는 왜 고향을 떠나야 했는가. 이는 재판의 후유증 때문이었다.

그녀는 재판에 이기고도 수모를 겪었다.
가장 참기 힘든 건 본인을 헤픈 여자처럼 보는 시선이었다. 사람들은 그녀가 성적 문제로 법정을 다녀왔다는 데만 주목할 뿐이었다. 갖은 모욕적인 언사가 스멀스멀 따라붙었다. 이 또한 시대가 그런 시대였기에 더 그랬다. 그녀는 이를 견디다 못해 고향까지 등지게 된 것이었다.
그 무렵, 토토사이트 마루한는 결혼도 했다.
상대는 피렌체 출신의 평범한 예술가였다. 그렇게 타지로 오고, 가정까지 꾸렸다. 누군가는 이러한 행보를 조용한 삶의 선언이자 시작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토토사이트 마루한는 여전히 비범했다. 그녀는 계속 그림을 그렸다. 내조(內助)에 헌신할 생각 따위 추호도 없었다.
토토사이트 마루한의 실력은 예나 지금이나 탁월했다.
피렌체에서도 곧 소문이 퍼졌다. 뛰어난 여류 화가가 갑자기 등장했다는 식이었다. 다만, 찝찝한 과거가 있다는 이야기 또한 함께였다. 그런 토토사이트 마루한에게 뜻밖의 주문이 들어왔다. 그녀는 종이를 읽고선 눈을 크게 깜빡였다. 의뢰자는 메디치 가문의 코시모 2세였다. 그는 피렌체의 손꼽히는 권력가였다. 그가 제안한 작품이 이번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였다.
실력자에게 인정받은 화가
‘여성’ 넘어 위대한 예술가

1615년의 어느 날, 코시모 2세가 직접 토토사이트 마루한의 화실을 방문했다.
코시모 2세만 오지도 않았다. 그는 아내도 데려왔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등 지식인도 여럿 대동했다. 그때도 피렌체에는 유명 예술가가 많았다. 이런 가운데 타지 출신의, 그것도 여성에, 심지어 (그게 누명일지언정)평판도 좋지 않은 이를 정성껏 예우하는 일은 흔치 않았다.
코시모 2세에게 중요한 건 실력이었다.
다른 건 무엇이 어떻든 상관없었다. 코시모 2세는 토토사이트 마루한 앞에 섰다. 당시 그녀는 한창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를 그리고 있었다고 한다. 토토사이트 마루한는 자연스럽게 물러섰다. 그러자 작업물이 훤히 보였다. 코시모 2세는 한참을 봤다. 코시모 2세는 그녀의 숨기고 싶은 과거를 이미 알고 있었다. 토토사이트 마루한가 유디트를 본인, 홀로페르네스를 타시에 빗대고 있다는 점 또한 눈치챌 수 있었다.
하지만, 코시모 2세는 이에 대해서도 일절 묻지 않았다.
“그녀의 기술을 보시오.
제 아버지(오라치오)보다 뛰어나지 않소?”
이렇게 말하며 웃을 뿐이었다. 다만 옛일인 만큼, 코시모 2세 무리가 직접 그녀 화실을 방문한 게 맞는지를 놓곤 일부 이견이 나오기도 한다.
코시모 2세는 곧 약속대로 그녀의 그림을 고가에 사들였다.
피렌체 최고 실력가가 작품을 직접 의뢰하고, 몸소 호평하고, 묵직한 돈주머니까지 안겼다…. 솜씨 있는 예술가를 넘어선, 위대한 예술가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고문, 재판 이후에도 따라붙는 괴소문에 시달렸던 그녀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거미줄을 걷고, 수풀을 헤치면서도 고꾸라지지 않았다. 그 끝에 있는 건 다행히도 영광과 자부심이었다.
저는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겠습니다.
당신은 시저의 용기를 가진
한 여성의 영혼을 볼 수 있을 겁니다.
토토사이트 마루한는 언젠가 그녀의 고객에게 이런 편지도 썼다.
스스로 결단 행동하는 몸,
시대가 그녀를 비껴가다

토토사이트 마루한는 언제든 잊을 만하면 악몽을 꿨다.
이는 타시가 끈질기게 따라붙는 꿈이었다. 웃음을 흘리며 허벅지를 들이미는 장면이었다. 그녀는 본인이 평생 무엇에 매달려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성난 여자, 그런 상태에서 ‘행동하는’ 여자를 그리는 일이었다. 타시의 악령이 지독하게 따라붙는 만큼, 그녀 또한 끈질기게 여기에 맞서기로 한 격이었다.
여인 야엘이 장군 시스라의 머리를 못으로 꿰뚫어 죽이는 <야엘과 시스라>, 왕족에게 능욕당한 여성 루크테리아가 이를 남편에게 알린 후 분노에 젖어 자결하는 <루크레티아>, 파라오였던 클레오파트라가 격정 속 독니로 생을 끊었다는 전설적 일화가 담긴 <클레오파트라> 등이 그런 그녀가 내보인 작품이었다.

그저 여리여리한, 단지 보이고 벗겨지는 몸이 아닌 탄탄한, 알아서 결단하는 몸으로의 여성이 화폭에 등장한 일.
이것은 분명 그녀가 갈고 닦은 길이었다. 토토사이트 마루한는 이런 그림을 그리며 계속해 타시를 떠올렸을 것이다. 압도하는 여성은 본인, 압도되는 남성은 타시에 투영해 거듭해 그를 죽였을 터였다.
토토사이트 마루한의 중기 이후 삶의 여정을 놓곤 세세하게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토토사이트 마루한는 1620년께 로마로 돌아왔다. 분위기는 그때와 달랐다.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메디치가의 후광을 업고, 이제는 어딜 가도 눈길 끄는 예술가가 돼 있었으니.

토토사이트 마루한는 이어 1626~1627년에 또 한 번 몸을 옮겼다.
닿은 곳은 베니스였다. 그다음은 나폴리, 이어 잠시 영국 런던…. 그녀가 여행 겸 간 곳도 있지만, 각 도시가 그녀를 초청해 간 사례도 많았다. 유력가 모두는 그녀를 유능한 예술가로만 대했다. 시대는 어느덧 그녀를 비껴가는 모습이었다.
창조자로의 자화상,
‘역사의 기억형’ 내리다

아르테미시아 토토사이트 마루한.
그녀가 선을 긋는다. 말아올린 머리칼은 아무렇게나 흘러내린다. 표정과 몸통에선 묵직함이 느껴진다. 녹색 드레스와 가죽 치마에도 무게감이 묻어있다. 이런 와중에 그녀가 목에 걸고 있는 건 하필 해골 목걸이다.
그림 속 젠틸레스키는 주체다.
스스로 창조할 수 있는 행동하는 인간이다. 보통의 정면 자화상과 달리 다루기에 까다로운 각도와 위치, 선명한 색채감부터 섬세한 주름까지. 이토록 어려운 방식에 도전하고, 당당하게 해냈다는 것. 이 또한 그녀가 창조자로서 갖는 자부심을 보여준다. 젠틸레스키의 작품, <회화의 알레고리로의 자화상>이다.
토토사이트 마루한는 1642년, 영국 내전이 시작되던 시기에 그 섬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마흔아홉 살이었다. 이후 그녀는 나폴리에 돌아온 것으로 전해진다. 그쯤에도 작업을 활발하게 했다지만, 활동 내용에 대해선 명확하지 않은 점이 있다.
토토사이트 마루한는 1652~1656년 사이에 사망했다.
나이를 계산하면 쉰아홉에서 예순셋 사이다. 어디서 어떻게 눈을 감았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페스트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이 또한 하나의 설일 뿐이다.

그러면, 이쯤에서 다시 첫 에피소드로 돌아가 보자.
토토사이트 마루한는 타시에게서 완전히 이겼는가. 다시 말해, 앞서 소개한 캐서린의 사례처럼 정의와 기백이 승리할 수 있었는가.
토토사이트 마루한 본인이 그렇게 만들고자 했다. 자꾸만 엇나가려고 하는 결과를 두툼한 팔로 휘어잡았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더 원숙해졌고, 그녀의 주제의식 또한 명징해졌다. 보다 날카로운 붓으로 평생 놈을 죽이고, 그렇게 끝없는 복수를 가했다. 타시는 당장 가벼운 형을 받은 듯했지만, 그에게 내려진 건 무기형보다 무서운 역사의 기억형이었다. 지금도 우리는 그를 화가보다는 파렴치한으로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토토사이트 마루한 또한 이에 따라 상처투성이가 됐지만, 이것만큼은 분명 말할 수 있다. 그녀 또한 결국은, 그리고 영원히, 이겼다.
참고자료
스티븐 파딩, 501 위대한 화가, 마로니에북스
Jaskulla, G. (2024). Artemisia Gentileschi: Romanbiografie. Insel Verlag GmbH
Nijuck, K. (2025). Fire & fury: Artemisia Gentileschi art prints: A vintage wall art collection and collage fodder book for ephemera art book lovers, junk journaling, an. Independently Published
Garrard, M. D. (1991). Artemisia Gentileschi: The image of the female hero in Italian Baroque art (Reprint ed.). Princeton University Press
yul@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