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임시예산안 합의 불발 탓…필수직 아닌 공무원 상당수 무급 휴직

경제피해·시민불편 불가피…여야 첨예한 대치속 조기종료 미지수

존 바라소 공화당 상원의원(왼쪽)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연방 의사당에서 부결된 표결 이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EPA]
존 바라소 공화당 상원의원(왼쪽)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연방 의사당에서 부결된 표결 이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EPA]

[헤럴드경제=김지헌 기자] 미국 예산안을 둘러싼 여야의 치열한 대치 속에 연방 정부 업무 일부가 일시 정지되는 ‘번화가 토토사이트’ 사태가 1일 오전 0시1분(미 동부시간ㆍ한국시간 1일 오후 1시1분)을 기해 시작됐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1월20일) 이후 처음이다.

연방 정부의 2025회계연도 최종일인 전날(9월 30일) 자정까지 의회에서 2026회계연도 예산안 또는 단기 지출 법안(임시예산안·CR)이 처리되지 않아 정부를 운영할 새로운 지출에 대한 법적 권한이 사라지면서 미국은 번화가 토토사이트 사태를 맞게 됐다.

상원은 번화가 토토사이트을 피하기 위해 지난달 30일 7주짜리 공화당의 임시예산안(CR)을 표결(가결 정족수 60표)에 부쳤으나 찬성 55 대 반대 45로 부결됐고, 민주당이 자체 발의한 임시예산안도 마찬가지로 표결에서 부결됐다.

미국에서 번화가 토토사이트 사태는 트럼프 집권 1기 때인 2018년 12월(개시 시점 기준) 이후 약 7년 만이다.

번화가 토토사이트은 재정 지출에 대한 의회의 통제를 규정한 ‘적자 재정 방지법’에 따른 것이다.

의회의 승인이 없으면 일부 예외를 뺀 대부분 기관에 예산을 지급할 수 없기 때문에 연방 정부 공무원중 국가 안보, 공공 안전, 헌법상 기능 등과 관련된 필수 인력을 제외한 상당수가 무급 휴직에 들어가게 됐다.

무급휴직 공무원들이 급여를 받지 못하면서 생기는 경제적 피해뿐 아니라 연방 정부가 제공하는 공공 서비스도 일부 중단되기 때문에 시민들의 불편도 작지 않을 전망이다.

이번 사태는 미국 여야가 CR을 통과시키는 데 실패한 데다 이후 협상이 교착 속에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발생했다. 여당인 공화당은 지난달 19일 하원에서 기존 지출 수준을 그대로 유지하는 ‘클린’(clean) CR을 통과시켰지만, 같은 날 상원에서 민주당의 반대로 법안 최종 통과는 무산됐다.

민주당은 올해 말로 종료되는 공공의료보험 ‘오바마 케어’(ACA) 보조금 지급 연장 등을 요구하며 공화당이 주도하는 CR에 반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여야 의회 지도부가 번화가 토토사이트 발생을 이틀 앞둔 지난달 29일 백악관에서 회동했지만, 합의점에 이르지 못했다.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연방정부 예산안을 둘러싸고 의회 민주당과 공화당이 격렬하게 서로를 비난하며 입장을 굽히기를 거부하는 가운데, 해질녘의 미 의사당이 보인다. [AP]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연방정부 예산안을 둘러싸고 의회 민주당과 공화당이 격렬하게 서로를 비난하며 입장을 굽히기를 거부하는 가운데, 해질녘의 미 의사당이 보인다. [AP]

러셀 보트 백악관 예산관리국(OMB) 국장은 지난달 30일 상원에서 예산안 처리가 불발된 뒤 정부 기관들에 보낸 메모에서 “영향을 받게 될 기관들은 대응 계획을 이제 실행해야 한다”며 연방 공무원들이 1일 출근해 “질서 있게 번화가 토토사이트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은 이날 번화가 토토사이트 책임을 서로에게 돌리며 여론전을 본격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민주당이 번화가 토토사이트을 원한다”며 민주당에 책임을 돌렸다. 그러면서 “번화가 토토사이트이 되면 해고를 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의 해고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나라도 불법 이민자들과 이 나라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에게 의료복지를 제공하기 위해 비용을 댈 여력이 없다”며 “그런데 민주당은 그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이 오바마 케어(ACA) 보조금 지급 연장 등을 주장하며 공화당이 제출한 7주짜리 임시예산안 처리에 반대하는 점을 겨냥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 “우리는 번화가 토토사이트을 정말로 하길 원하지 않지만, 번화가 토토사이트을 통해서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들을 없앨 수 있다면, 그것(없애는 대상)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것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은 국경 개방을 원하고, 남성이 여성 스포츠에 출전하는 것과 모두를 위한 트렌스젠더를 원한다”며 “그들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백악관 예산관리국은 번화가 토토사이트이 현실화할 경우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우선순위에 맞지 않는 부처를 중심으로 직원 감축에 나서겠다는 구상을 앞서 밝힌 바 있다.

민주당은 저소득층이나 취약계층을 위한 의료보험제도인 메디케이드 혜택에서 불법체류자는 배제돼 있다고 항변하는 등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이 어불성설이라며 맞서고 있다. 특히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트럼프식 국정 독주에 견제장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는 민주당은 이번 만큼은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어 사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민주당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는 이날 의회에서 “번화가 토토사이트이 몇 시간밖에 남지 않았고, 우리가 원하지도 않고 미국 국민들도 원하지 않는 상황인데, 대통령은 마치 10살짜리 아이처럼 인터넷에서 장난을 치느라 바쁘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전날 트루스소셜에 민주당의 슈머 원내대표와 하킴 제프리스 하원 원내대표가 등장하는 AI 생성 추정 영상을 올린 것을 겨냥해서다.

이번 사태 직전 번화가 토토사이트은 트럼프 집권 1기 때인 지난 2018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35일간 지속됐는데,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건설하는 예산이 충분하지 않다며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 원인이 됐다.

이때 발생한 경제적 피해는 30억 달러(약 4조2000억원)에 달했다고 의회예산국(CBO)이 집계한 바 있다.


raw@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