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적인 돈을 주무르는 기업인, 말 한 마디에 주가가 출렁이는 금융인, 미래를 바꾸는 창업가, 국제정세를 쥐락펴락하는 지도자. [더 비저너리]는 세상의 흐름을 주도하는 파워 리더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무엇이 현재의 그들을 만들었으며, 어떤 철학과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그들의 생생한 스토리를 전해 드립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축복 없이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만들 수 있고,
빌 게이츠의 축복 없이 실리콘밸리에서 소프트웨어를 출시할 수도 있지만,
안나 페스타토토의 축복 없이 패션계에서 성공하는 건 불가능하다.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멧 갈라(Met Gala)’
제니, 로제, 리사 등 K팝 블랙핑크 멤버는 물론 전 세계 셀럽들이 총집결하는 현존 최고의 패션·예술계 행사다. 본래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탄생했지만 세계 유명 인사의 패션 영향력을 보여주는 쇼로 더욱 잘 알려졌다. 그 행사의 주최자이자, 현재 보그 미국 편집장인 안나 페스타토토(75)가 일생일대의 결단을 내렸다. 37년 만에 보그를 떠나기로.
페스타토토는 지난달 25일 직원회의에서 편집장직 사임를 공식화했다. 그러나 편집장에서 사임했을 뿐 보그를 떠나는 것은 아니다. 페스타토토는 보그에서 신설한 직위인 글로벌 편집책임자 겸 보그 발행사인 콘데나스트의 글로벌 최고콘텐츠책임자(CCO) 역할을 유지할 예정이다. 콘데나스트는 보그 외에도 GQ, 베니티페어 등 유력 잡지를 세계에서 발행 중이다.
사시사철 유행이 급변하는 패션계에서 페스타토토는 40년 가까이 군림한 ‘패션계의 교황’으로 불린다. 최근에도 페스타토토는 지난달 10일 갓 제대한 방탄소년단(BTS) 뷔와 만나 화제가 됐다.
눈썹을 살짝 가린 앞머리에 앞가르마 단발머리,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보브컷’을 한 페스타토토는 지난 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명품 브랜드 셀린느 패션쇼에서 뷔에 옆자리를 내줬다.
![안나 페스타토토 보그 편집장과 방탄소년단(BTS) 뷔 [엑스(X·옛 트위터)]](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7/08/news-p.v1.20250707.9d91497247b84b73a05c6fd2914dde5a_P1.jpg)
이날 ‘셀린느 2026 봄 컬렉션’에서 페스타토토는 셀린느 엠바사더인 뷔와 반갑게 인사하고 대화를 나눴다. 공개된 현장 영상에 따르면, 페스타토토는 “만나서 반갑다. 파리에 온 것을 환영한다”며 “오는 10월 할리우드에서 열리는 행사에 꼭 오시길 바란다”며 뷔를 초대했다.
페스타토토가 언급한 행사는 10월 26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할리우드 파라마운트 픽처스 스튜디오 부지에서 개최될 예정인 ‘보그 월드: 할리우드’다. ‘보그 월드’는 전 세계 셀럽들이 모이는 행사로, 2022년 뉴욕에서 시작됐다. 2023년에는 런던, 지난해는 파리에서 열렸고, 올해는 할리우드에서 열린다.
“교복도 내 스타일로”…학교보단 사교계에 관심 많았던 아이
![지난 2019년 안나 페스타토토가 ‘멧 갈라(Met Gala)’에 참석하고 있다. [AP]](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7/08/rcv.YNA.20250627.PAP20250627020301009_P1.jpg)
안나 페스타토토는 1949년 11월 3일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영국 일간지 ‘런던 이브닝 스탠더드(London Evening Standard)’의 편집국장이었으며, 어머니는 콜롬비아 픽처스에서 TV쇼와 대본을 검토하며 영화 평론가로 활동한 엘리너 “노니” 트레고 베이커였다. 페스타토토의 어머니는 나중에 임신한 미성년자를 돕는 사회복지사로도 일했다.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사망한 오빠 재럴드를 제외하면, 페스타토토에게는 현재 3명의 형제가 있다. 영국 ‘가디언’의 외교 에디터인 패트릭, 런던 지방정부에서 일하는 제임스, 그리고 국제 노동조합 임원 출신의 노라가 그들이다.
![1964년 런던 세인트존스우드에서 왼쪽부터 안나 페스타토토, 제임스, 노라, 패트릭, 그리고 노니 페스타토토가 서 있다. [CNN]](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7/08/news-p.v1.20250704.084f5c5152db4842ad81fcaabf6dddef_P1.jpg)
페스타토토는 1960년 런던 상류층 학교인 퀸스 칼리지라는 사립 여학교에 다녔으나 자퇴를 고려할 정도로 학교 생활을 싫어했다. 교복 규정을 자주 어기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개조해 입고 다닐 정도로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이로 인해 페스타토토는 교사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남들 시선보다 내 감각이 중요하다’는 신념이 있었다. 1963년 페스타토토는 노스 런던 여학교로 전학을 갔지만, 런던의 사교계에 더 관심을 보였던 그녀는 결국 16세에 자퇴를 했다.
청소년 시절부터 페스타토토는 스타일에 민감했다. 그녀는 스타일이 없는 친구들을 놀리기도 했고, 학교를 빠지고 쇼핑을 하거나 당시 영국에서 유행했던 TV프로그램 ‘레디 스테디 고’를 즐겨 봤다. 특히 미국에 있는 할머니가 보내주는 미국 하이틴 패션 잡지인 ‘세븐틴’을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패션에 매료됐다.
페스타토토의 아버지는 패션에 관심이 많던 그녀에게 패션 업계에서 일할 것을 권유했다. 이후 페스타토토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고졸의 학력으로 잡지사에 취업한다.
파격 스타일로 시작한 커리어…패션 변화의 ‘신호탄’ 되다
![1970년대 초 패션쇼에 참석한 안나 페스타토토 [CNN]](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7/08/news-p.v1.20250704.7dd574e1adda4859869a7209d9c3a065_P1.png)
페스타토토는 1970년 하퍼스앤드퀸의 패션 어시스턴트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하퍼스 바자(Harper‘s BAZAAR), 비바(Viva), 뉴욕매거진(New York Magazine) 등을 거쳤다. 현재 그녀의 위신과 영향력을 생각하면 페스타토토의 커리어가 항상 순탄했을 것 같지만, 초기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1975년 ‘하퍼스 바자’ 미국에서 패션 에디터 어시스턴트로 일하던 시절 그녀는 혁신적이고 성(性)적인 촬영으로 9개월 만에 해고를 당했다.
이후 그녀의 당시 남자친구 존 프래드쇼의 도움으로 여성 성인 잡지인 ‘비바’로 이직을 하게 되지만 비바는 에로틱 출판물이라는 오명을 극복하지 못해 1978년 영업을 중단하게 된다. 그러나 페스타토토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뛰어난 실력으로 업계에서 인정받아 1981년 ‘뉴욕 매거진’의 패션부 편집장으로 취직해 2년간 근무한 뒤 이후 미국 보그로 둥지를 옮겨 ‘패션계 교황’의 첫 걸음을 내딛는다.
![1988년 11월호 미국판 보그(Vogue) 표지 [CNN]](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7/08/news-p.v1.20250704.25abd523b78e41a9a990d2b3a7be8910_P1.png)
1988년 11월호 미국 보그의 표지 앞면은 그야말로 혁신의 신호탄이 됐다. 당시에는 표지에 유명 모델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사진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면, 페스타토토는 모델의 얼굴보다 ‘스타일’에 집중했다. 유명한 모델이 아닌 무명 모델을 기용하고, 일반적인 스튜디오가 아닌 거리에서 촬영했으며, 1만달러 티셔츠와 50달러 청바지를 입혔다. 당시에는 파격적인 행보가 아닐 수 없었다. 이전의 보그에는 청바지가 등장한 적도, 가격대가 다른 아이템을 혼합해 매치한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출판사 인쇄 담당자조차 이 표지를 보고 깜짝 놀라, 실수로 잘못 보낸 사진인지 확인 전화를 걸어왔다는 후일담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파격의 신호탄이었던 청바지는 페스타토토의 ‘의도’가 아닌 ‘우연’이었다. 페스타토토에 따르면, 촬영 당시 모델이 비즈 장식 자켓과 스커트를 입을 예정이었지만, 스커트가 잘 맞지 않아 급한대로 청바지를 입게 된 것이다.
페스타토토는 2012년 보그 특집 기사에서 “베르쿠(모델)는 이스라엘에서 휴가를 보내고 돌아온 뒤 약간 체중이 늘었었다”고 말했다. 페스타토토는 또 “사람들은 그 뒤로 이 이미지에 온갖 해석을 덧붙였다. 고급과 저렴함의 조화라거나, 미카엘라가 임신 중이었다거나, 종교적 상징이라거나, 하지만 다 틀린 이야기다”라고 덧붙였다.
“그 표지는 캐주얼하며, 마치 거리에서 찍은 스냅샷 같았다. 실제로 거리에서 촬영한 것이고, 바로 그게 핵심이었다.”(안나 페스타토토)
이후 페스타토토는 미국 팝 문화 아이콘을 조명하고, 남성을 표지에 등장시키기도 하며 이전의 편집장들이 주저했던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해 나갔다.
페스타토토는 1990년대부터 ‘멧 갈라’의 호스트로 활동하며 이 행사를 단순 자선행사에서 전 세계가 주목하는 셀럽 패션의 정점으로 끌어올렸다. 멧 갈라는 코스튬 인스타튜트의 기금을 마련하고 연례 전시회의 개막을 기념하기 위해 진행되며, 행사를 통해 모이는 모금액이 매년 평균 150억원에 달하는 규모가 큰 패션 행사라고 할 수 있다.
‘보브컷’과 ‘커다란 선글라스’…페스타토토의 아이콘이 되다
![안나 페스타토토가 지난달 30일 뉴욕 공립 도서관에서 열린 마크 제이콥스 2026 패션쇼를 떠나고 있다. [게티이미지]](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7/08/news-p.v1.20250704.a7d6477d43e74822992cec3d0ee19ed4_P1.jpg)
페스타토토는 수십 년 동안 금발의 보브컷을 고수했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페스타토토는 14~15세 무렵부터 염색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페스타토토가 청소년기를 보낸 1960년대 런던은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스티일인 스윙잉 런던 시기로, 패션·음악·예술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였다. 페스타토토는 비틀즈, 롤링 스톤스, 모델 트위기 등에 열광했고, 이때부터 보브컷 헤어스타일을 고수했다. 이 머리는 페스타토토의 시그니처이자 정체성이 됐다.
보브컷과 선글라스는 이제 그녀를 하나의 로고처럼 기억하게 만들었다. 한 패션 분석가는 “이제 와서 보브컷을 바꾸는 것은 보그의 역사를 다시 쓰는 것과 같다”고 했다.
페스타토토는 보브컷과 커다란 선글라스, 누드 컬러의 마놀로 블라닉 슬링백(뒤꿈치가 트인 하이힐)을 늘 고수해 왔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바로 알아볼 수 있다. 페스타토토는 본인이 쓰는 선글라스를 “갑옷”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감정을 숨기고, 사생활을 지키며, 신비한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다.
![안나 페스타토토가 지난 2012년 6월 2012 뉴욕 CFDA 패션 어워드에 참석하고 있다. [게티이미지]](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7/08/news-p.v1.20250704.fe877fb875444f0fa7d77be3c5ed77a8_P1.jpg)
유일하게 변한 것은 페스타토토의 옷차림이다. 1980~1990년대에 그녀는 대담하고 실험적인 룩을 즐겼지만, 지금은 세련된 샤넬 수트나 플로럴 미디 드레스 같은 클래식한 스타일을 즐겨 입는다.
다만 문제는 자신의 스타일에 대한 엄격한만큼 타인에게도 외모지상주의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직원들의 복장 규율을 정하고 비만을 싫어해 오프라 윈프리에게도 보그의 표지 모델을 하고 싶다면 다이어트를 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 선민사상과 앨리트주의가 심하기도 하다. 페스타토토는 기성세대와 앨리트주의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 ‘그런지 패션’을 매우 싫어해, 디자이너들에게 그런지 요소가 들어가면 보그에 실어주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그 이후로 그런지 패션 요소가 패션계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페스타토토의 취향이 보그에 반영되는 듯, 보그는 어느 시점부터 일반인과 완벽하게 분리돼 상류층의 생활만을 다루고 보여준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뉴클리어’ 페스타토토…‘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미란다보다 더 단호한 리더십
페스타토토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일례로 그녀의 말 한 마디에 4대 패션위크의 순서가 바뀐 적도 있다. 또 페스타토토가 현장에 도착하지 않는 이상 중요 패션쇼는 절대 시작조차 하지 않기도 한다. 2011년 당시 페스타토토가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일부 패션위크에 참석할 수 없을 거라고 통보하자, 패션 업계에서는 일정을 수정해 페스타토토가 패션위크에 참석하게끔 조정했다.
![지난 2014년 5월 미셸 오바마(왼쪽)와 안나 페스타토토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열린 안나 페스타토토 코스튬 센터 그랜드 오프닝에 참석하고 있다.[게티이미지]](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7/08/news-p.v1.20250704.c2a4cd9c0afd48af8df91786dd76dcc8_P1.jpg)
페스타토토의 영향력은 패션업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버락 오바마, 미셸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 등 정계 대형 거물에서부터 시애나 밀러, 세라 제시카 파커, 휴 잭맨, 니콜 키드먼, 케이트 블란챗 등 할리우드 배우 등과도 인연이 깊다.
오랜 시간동안 보그를 이끌어온 페스타토토를 둘러싼 소문 중 하나는 그녀가 차갑고 무자비하다는 것이다. 외신은 종종 그녀의 이름을 겨울처럼 차갑다는 뜻으로 “뉴클리어 페스타토토”라고 부르기도 한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의 작가 로렌 와이스버거는 페스타토토의 전직 비서로 그녀를 냉혹한 편집장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패션 디자이너들의 말에 따르면 페스타토토가 알려진 것처럼 차가운 성격은 아니라고 한다. 페스타토토는 런웨이가 시작하기 전에 항상 무대 뒤로 가서 디자이너한테 격려의 말을 전하고, 디자이너들이 곤경에 처하면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준다고 한다.
페스타토토가 지목하고 지원하는 디자이너들은 거물급의 스타 디자이너가 됐다. 대표적으로 마크 제이콥스와 존 갈리아노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었으나, 페스타토토가 신인 때부터 그들을 알아보고 경제적 지원을 해줘서 스타급 디자이너로 성장했다. 그 밖에도 알렉산더 왕, 프로앤자슐러, 필립림, 제이슨우 등 그녀가 지목했던 디자이너들은 패션 업계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마크 제이콥스와 안나 페스타토토 [게티이미지]](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7/08/news-p.v1.20250704.c318e58a0ca1481bb460483dca1310d0_P1.jpg)
페스타토토의 성격이 냉철하고 차갑다는 인식을 갖게 된 이유로 추진력이 강하고 행동이 빨라서 같이 일하는 직원들에게도 자신과 똑같은 역량을 기대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자신의 의견을 막무가내로 고집하기보다는, 부서 직원들의 조언을 주의 깊게 듣고, 자신의 결정이 틀렸다고 생각하면 곧바로 수정한다.
최근 영국 총리 대변인 출신 앨러스터 캠벨은 자신의 저서 ‘Winners’를 집필하며 페스타토토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페스타토토는 캠벨과의 인터뷰에서 “우유부단하고, 결정에 몇일 또는 몇 주가 걸리는 상사를 보면서, 가장 중요한 건 단호함이라는 사실이라는 것을 배웠다”라며 “리더가 확신을 내리고 결정을 하면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명확한 신호가 된다. 리더는 자신감이 없어도 있는 척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도 혼란스럽지 않다”고 말했다.
또 그녀는 1970년대 중반 하퍼스 바자에서 해고된 경험을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로 꼽았다. 그녀가 해고된 이유는 “미국 패션을 이해하지 못한다”였다. 이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최소 한 번쯤 해고당해 봐야 해요. 그건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거든요.” 안나 페스타토토.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스틸컷 [네이버 영화]](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7/08/news-p.v1.20250704.c8443bf8bf964ac4bf8ffa80c2136966_P1.jpg)
한편, 안나 페스타토토를 모델로 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두 번째 시즌이 제작에 들어갔다. 이는 안나 페스타토토의 영향력을 방증하는 또다른 사례다.
20세기스튜디오는 공식 소셜미디어에 빨간 하이힐 영상을 올리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의 제작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버라이어티 등 외신에 따르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에는 메릴 스트립, 앤 해서웨이, 에밀리 블런트, 스탠리 투치에 더해 케네스 브래너가 캐스팅됐다. 브래너는 런웨이 매거진의 편집장 미란다 프리슬리의 남편 역을 맡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