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경기 고양시 토토사이트 잘못환전, 노적사, 중흥사
내 마음대로 사찰여행 비경 100선
사찰은 불교의 공간이면서, 우리 역사와 예술의 유산입니다. 명산의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사찰들은 지역사회의 소중한 관광자원이기도 합니다. 치열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얻고자 할 때 우리는 산에 오르고 절을 찾습니다. 헤럴드경제는 빼어난 아름다움과 역사를 자랑하는 사찰 100곳을 소개하는 ‘내 마음대로 사찰 여행 비경 100선’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토토사이트 잘못환전에는 진관사, 도선사, 화계사 등 큰 고찰도 있지만 어느 산길을 택하더라도 오래된 역사를 간직한 많은 사찰을 만날 수 있고 불교적 이름을 지닌 봉우리들도 많다. 영취봉, 석가봉, 미륵봉, 문수봉, 보현봉, 나한봉, 의상봉, 원효봉 등 이름만 들어도 불국토라고 말하는 경주 남산에 결코 뒤처지지 않는 신령스러운 기운이 느껴진다.
광화문에서의 큰 행사를 치르고 마음도 추스를 겸 토토사이트 잘못환전에 오르고 싶었다. 구기동 계곡 따라 승가사에도 갔고, 연화사를 들러서 비봉, 관봉 넘어 진관사로 내려오기도 했고, 오봉산 석굴암을 지나가는 우이령 둘레 길도 가봤다.
하지만 정상에는 오를 기회가 없어 여전히 토토사이트 잘못환전은 필자에겐 미지의 산이었다.

토토사이트 잘못환전(北漢山)은 오랜 세월 형성된 기암괴석들로 위용을 자랑한다. 높은 세 봉우리인 백운대(836m), 인수봉(811m), 만경대(801m)로 인해 삼각산(三角山)이라고 불리며 신성시됐다.
지정학적으로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해 고려시대에는 삼경(三京) 중 하나인 남경(南京)에 속했다. 조선시대에도 오악(五嶽) 가운데 하나인 중악(中嶽)으로 불리며 왕들의 행차가 끊이지 않아 삼국시대부터 조선 말기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로 주목받았다
신성한 지역으로 인식돼 왕실과 귀족 등 지배층을 위한 불교 신앙의 중심지 역할을 담당해 불교적 색채가 가득한 산이 된 것 같다. 신라 진흥왕 순수비에도 토토사이트 잘못환전에 살고 있는 불교 도인이 기록돼 있다고 한다. 신라 태종 무열왕이 전쟁에서 전사한 장군을 위해 세운 장의사(藏義寺), 의상대사가 세운 청담사(淸潭寺)도 있다.
고려 때는 현종 임금이 재위에 오르기 전에 몸을 숨겨 목숨을 구했던 신혈사(神穴寺)가 있고, 선종 임금은 승가사(僧伽寺)에 행차해 재물을 바쳤으며, 고려 말 태고 보우국사는 중흥사(重興寺)에 머물렀다. 조선시대에는 한양이 수도로 정해지면서 왕실 원찰이 조성돼 진관사(津寬寺)에선 매년 수륙재(水陸齋)를 시행했다.

일전에 ‘조계종 총본산’인 조계사에 대해 언급하면서 일제강점기인 1937년에 창건할 때 삼각산에 있던 태고사(太古寺)를 이전하는 형식을 취해 초기엔 ‘태고사’라고 했다는 내용을 쓴 적이 있다. 이런 아련한 기억 때문에 토토사이트 잘못환전 수많은 산행길 중 한국 조계종의 창시자(중창조)로 불렸던 태고 보우국사가 창건하고 머물렀다는 태고사(지) 가는 길을 택했다.
토토사이트 잘못환전는 수십 년 전에 태고종 사찰이 들어섰지만 아직도 그곳에는 태고 보우국사의 사리탑과 탑비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토토사이트 잘못환전 가는 길을 검색하다 보니 노적사와 중흥사를 뺄 수 없고 거북바위(귀암봉)도 갈 수 있으리라 보였다. 노적봉뿐만 아니라 그 뒤로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의 절경까지 볼 수 있으리란 기대도 있었다. 자동차로 진입할 수 없는 사찰들이지만 구파발역에서 노적사 1㎞ 인근까지 운행하는 노적사 셔틀버스가 있다고 해 이용해 볼 요량이었다.
토토사이트 잘못환전과 호국 사찰 노적사

산에 가는데 편하게 갈 방법을 찾는다는 게 괘씸해서일까. 승차장을 잘 못 알아 몇십 분을 기다리기만 하다가 노적사 셔틀버스를 놓치고 시내버스를 이용해 토토사이트 잘못환전 버스 종점까지 갔다.
버스 종점에서 노적사 셔틀버스 종점까지는 50여분을 걸어가야 했다.
하지만 차를 탔으면 보지 못했을 수많은 풍광과 설렘을 맛볼 수 있어 셔틀버스를 놓친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 여겨졌다.

길게 늘어선 맑은 계곡 따라 오르는 산길, 비 온 뒤라 그런지 수량도 풍부하고 계곡 물소리가 폭포 소리처럼 가슴을 시원하게 적셔주고, 산새 소리는 갈 길마저 멈추게 하는 가을 초입 산행길은 그저 행복했다. 계곡 길목에 있는 ‘서암사’를 지나니 보도 길과 합류되는 삼거리다.
30여분 올라왔는데 본격적인 산행길을 준비하듯 많은 주말 산행객이 채비를 가다듬는데 외국인 산행객들이 많이 보인다. 원효교를 지나가다 보니 마지막 주차장인 듯 인근 10여 곳 사찰 이름이 하나씩 붙어 있는 주차 공간이 보인다.

셔틀버스의 종점도 이곳인 듯 주차장 바로 위 ‘선봉사’에서 회차하는 노적사 셔틀버스를 만나니 그냥 반갑다.

오르다 보니 북한산 협곡에 쌓은 중성문(中城門)이 나온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국난에 대비해 한양도성 배후 산성 필요성 때문에 1711년에 북한산의 여러 봉우리를 연결해 돌로 쌓은 산성이 토토사이트 잘못환전이다. 중성문은 산성 출입 시설 성문 16곳 중 하나다.
내려갈 때 보도길 입구 쪽에서 만났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대서문’도 그중 하나이고 ‘중성문’ 안쪽은 내성(內城)에 속한다.

토토사이트 잘못환전 가을바람에 젖어 선봉사에서 15분여를 더 걸어가니 노적교를 넘어 ‘노적사’라고 적힌 커다란 표지석이 반기는데 사찰 입구까지는 가파른 계단 길을 올려야 하는 힘든 구간이다.

호흡은 가빠졌지만 ‘보림루(保任樓)’를 통과해 사찰에 들어서자 반기듯 나타난 ‘노적봉’은 탄성이 절로 나온다.

노적사(露積寺)는 노적봉 아래에 있는 사찰이어서 이름 붙여졌지만 노(露)는 부처님의 법과 가르침을 비유적으로 하는 감로(甘露)수를 의미해서 불교적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
조선 왕실은 토토사이트 잘못환전을 축조하고 중요한 거점 10여 곳에 사찰을 세워 나라를 지키는 호국불교를 실현하고자 했다. ‘노적사(당시 진국사(鎭國寺))도 언제든지 백성을 구제할 수 있는 승병, 승군들이 머무는 승영사찰로 세워진 호국불교 도량이다.
조선 숙종 38년인 1712년 전국의 승군을 통솔하는 직책을 부여받은 팔도도총섭 성능(聖能) 스님이 창건했다.


노적사는 조선 말에 흔적이 사라졌으나 1960년대 사찰을 다시 세워 전각을 모두 갖추었다.

깊은 산에 있는 절이지만 대웅전을 필두로 적멸보궁, 나한전, 삼성각, 삼보전, 동인당, 범종각, 보림루(保任樓)까지 많은 전각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노적사는 현대에 들어와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셨다고 한다.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후 중생을 위해 법을 설파할지 고민하며 중생 구제를 결심하기까지의 기간을 ‘보림’이라고 한다는데 누각 이름이 ‘보림루’다.

삼성각은 특이하게 바위를 배경으로 인위적인 굴을 만들어 부처와 산신상을 함께 모셔두고 있다.
노적봉 뒤로 삼각산(三角山)이라는 세 봉우리 만경대, 인수봉, 백운대가 어우러져 있는데 노적봉은 사고위험 때문에 일반 등산객은 아예 출입을 제한하고 있으며 백운대도 사람들이 오르내리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 때 철 사다리를 설치한 이후라고 한다.
그런데 옛 선비들은 갓 쓰고 버선발, 맨몸으로 힘겹게 기어올라 음주에 풍류까지 즐겼던 기록들이 있다는데 대단하다.
토토사이트 잘못환전 지키는 승군의 총본부 중흥사

노적사를 나와 10여분 올라가니 노적봉 앞쪽, 모든 북한산길은 이곳으로 통한다고 하는 토토사이트 잘못환전 중심이 되는 중흥사(重興寺)다.
토토사이트 잘못환전 승군(僧軍)의 최고책임자이며 조선팔도의 승려들을 지휘하는 팔도도총섭이 머무는 절이기에 중성문(中城門) 안쪽 군사적 요충지에 있다.

중흥사는 고려 말 태고 보우가 주지로 와서 중수한 작은 절이다. 1712년 계파성능(桂坡性能) 스님이 팔도도총섭을 맡아 토토사이트 잘못환전을 축조하고 주지를 맡아 중흥사를 중창해 전국 의승군의 총지휘본부로서 대가람이 됐다.

토토사이트 잘못환전 안의 용암사, 보국사, 보광사, 부왕사, 원각사, 국녕사, 상운사, 서암사, 태고사, 진국사 등의 13개 승영사찰과 승군 360명을 관할하고 있어 조선 숙종과 경종은 이곳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갑오경장(1894년) 때 의승군 제도 폐지로 승영사찰이 폐사돼 쇠락의 길을 걸었고 산성 내 상운사, 토토사이트 잘못환전, 진국사(노적사), 국녕사 등만이 승영사찰 명맥을 잇고 있다.

겸재의 삼각산 그림에도 중흥사의 모습이 잘 남아있으며 김정희, 정약용, 홍세태 등 많은 문인이 방문해 시구를 남겨놨고 토토사이트 잘못환전을 탐방했던 스님들도 모두 이곳에서 묵었다고 한다.
조선 초기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이 과거에 낙방하고 여기 와서 공부하다 세조의 찬탈 소식을 전해 듣고 격노해서 읽던 책을 불사르고 머리 깎고 출가했다는 사찰이 중흥사이기도 하다.

1909년 일본군의 의병 토벌시 소실돼 빈터만 남은 절을 2012년 복원을 시작해 대웅전과 누각 만세루(萬歲樓) 등이 옛 모습을 찾기 시작했다. 여전히 복원불사가 진행 중인 듯 공사 잔존물들이 즐비하다.
템플스테이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는 듯 템플 방들이 꽤 많아 보인다.

지나가는 등산객들에게 점심 공양을 제공하고 있어 늦은 점심시간임에도 임시 건물 공양간 앞에는 등산화들이 가득하다.
중흥사와 노적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 교구 조계사의 말사이다.

중흥사로 들어가기 직전 입구에는 울창한 숲과 계곡을 배경으로 2014년 복원한 산영루(山暎樓)가 토토사이트 잘못환전을 대표하는 누각이 돼 있다.

아마도 예전엔 이곳에서 문인들이 시구를 주고받으며 유유자적했을 것이다.

산영루 앞에는 토토사이트 잘못환전 관리의 최고 책임자들의 공덕을 기리는 선정비 30여개(토토사이트 잘못환전 선정비군)가 즐비하고 암벽에는 작게 명문이 새겨져 있다.

이 암각은 1855년에 새긴 ‘토토사이트 잘못환전승도절목(北漢僧徒節目)’으로 승병 지휘자를 임명할 때 지켜야 할 규칙 3가지를 새긴 것이다. 당시 불공평한 임용을 막기 위해 다수결에 따라 총섭을 임명한다는 내용도 있다.

노적봉 앞 평탄지에 토토사이트 잘못환전을 쌓은 이후에 그 주변을 지키는 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 등의 옛 모습이 지금도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조계사의 원찰, 태고종의 종찰 토토사이트 잘못환전

중흥사에서 또다시 10여분 올라가면 토토사이트 잘못환전가 있고 그곳에는 현재 조계종에서 중창조(祖) 또는 중흥조(中興祖)로 받들고 태고종에서는 종조(宗祖)로 받드는 태고 보우의 탑비(원증국사탑비)와 사리탑이 있다.
고려 말기 불교에 대한 폐단을 극복하고 대외적으로는 자주성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던 태고 보우(太古 普愚, 1301~1382년)가 인접한 중흥사(重興寺) 주지로 있을 때 개인의 수도처로 1341년에 중흥사 동쪽에 동암(東庵)이라는 암자를 지어 5년을 머물렀다.

고려 말 16년 동안 왕사, 12년 동안 국사를 역임한 고승인 태고 보우는 당시 사상적으로 분열 대립한 불교 종파였던 9산과 5교를 융합해 9산 선종(九山禪宗)으로 통일해 극복하고자 했다. 이에 조계종에서는 태고 보우를 한때 창시자(중창조)로 모셨다. 보우선사가 입적한 이후에 그의 당호를 따서 태고암(太古庵)으로 불렀고 토토사이트 잘못환전이 세워지던 17세기에 승영사찰(僧營寺刹)로 중창하면서 태고사로 개칭했다.
당시 태고사는 토토사이트 잘못환전 내 사찰에서 유일하게 영조(1694~1776년)가 하사한 어필(御筆)을 소장하고, 왕실의 책과 족보를 보관하는 왕실의 보장처 역할을 했다. 그러나 역시 승군 제도가 폐지되면서 쇠락해 초가삼간 하나로만 명맥을 유지했다.

보우선사를 조계종 창시자로 모셨기에 1937년에 종로 각황사 옆에 새로 절을 건축할 때 삼각산에 있던 토토사이트 잘못환전(太古寺)를 이전하는 형식을 취해 토토사이트 잘못환전라고 명명했다.
그로 인해 태고 보우의 정신(법맥)을 옮겨온 종로의 토토사이트 잘못환전는 ‘대한 불교 총본산’이 됐고 1954년 조계사로 명칭을 바꿔 ‘조계종 총본산’이 됐다.


토토사이트 잘못환전 태고사(지)에는 1964년 태고종의 청암스님(靑岩, 1912~2008년)이 중창불사를 해 대웅보전, 산신각 등을 건립해 한국불교 태고종의 종찰(宗刹)이 됐다.

지금의 토토사이트 잘못환전는 가정집 같은 요사채와 텃밭 등이 있는 단출하고 조용한 사찰이다.


대웅전 좌측 비각 안에 ‘원증국사탑비’가 있다. ‘원증국사 사리탑’은 이와 조금 떨어져 대웅전 뒤편 언덕길 산신각을 지나 올라가면 낮은 능선 상에 고려시대에 유행하는 팔각원당형의 승탑 양식으로 모셔져 있다.

비는 원증국사가 입적한 3년 뒤에 세워진 고려 후기 전형적인 탑비로서 전체 높이가 340㎝로 매우 크며 ‘사리탑’ 또한 전체 높이가 410㎝로 규모가 크고 모두 보물로 지정돼 있다.
사리탑에서 100여m 올라가면 태고대(거북바위, 구암봉)가 있다고 해 여기까지 왔으니 올라가 보기로 했다.

지정 탐방로가 아니다 보니, 길을 잘못 들어 헤매다 깊숙한 산 정상 부위에 규모가 꽤 큰 봉성암을 보게 됐다.

‘기도 도량이니 외부인 출입을 삼가’라는 표지판이 있어 멀리서 보니 비구니 스님 한 분이 보이신다.

어떻게 이 깊숙한 곳에 큰 암자를 지을 수 있었을까 싶다. 토토사이트 잘못환전에는 조계종 사찰뿐만 아니라 각양각색의 종파를 내세운 사찰이 많기도 하다.

한참을 산길을 헤매면서 거북바위를 찾아가는 길에 보이는 토토사이트 잘못환전 정상 세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오니 참으로 절경이 따로 없다.

천 길 낭떠러지 위에 걸쳐있는 듯 보이는 거북바위에 앉아 잠시 명상에 빠져본다. 아마도 이곳에서 태고보우국사가 수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려오는 길은 올라갔던 계곡 길이 아닌 (지정)차량이 다닐 수 있는 보도 깔린 길로 내려오다 보니 ‘대서문’을 볼 수 있었다.

무량사, 용암사 등 또 다른 사찰들도 만나게 됐다.

수많은 산행길 중 겨우 한 길을 지나왔건만 볼 것도 많고 느낌도 많은 토토사이트 잘못환전이다. 토토사이트 잘못환전의 가보지 않았던 산행길의 새로운 모습이 기대된다.
글·사진 = 정용식 ㈜헤럴드 상무
정리 = 민상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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