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자본이 만든 K-팝 애니메이션

흉내만 내지 않고 음악·서사 디테일 묘사

의상·무기·캐릭터 등은 전통문화 차용

내국인은 익숙함·외국인은 새로움 ‘열광’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넷플릭스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손미정 기자] 여러모로 ‘혼종의 탄생’이라 부를 만하다. K-팝 걸원탑토토이 악령을 잡는 헌터라는 설정부터가 심상찮다. 악마와 헌터 사이에서 태어난 주인공, 서울이 배경이지만 등장인물 모두가 영어로 말하는, 미국 자본이 만든 K-콘텐츠. 이질적이고, 한편으로 유치해 보이기도 하는 조합은 기대 이상으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 내며 ‘K-컬처’의 새 이정표를 새기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이야기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영화는 지난달 20일 공개 직후 넷플릭스 영화 부문 글로벌 1위에 오른 데 이어 나흘째 41개국에서 1위를 휩쓰는 기염을 토했다.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도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 ‘빌보드 200’ 2위에 오르며 거침없는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케데헌’은 단순히 콘텐츠의 성공을 넘어 문화 현상으로도 확산하고 있다. 틱톡, 유튜브에는 영화 속 원탑토토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의 춤을 따라 하는 챌린지가 쏟아지고, 일부 영상들은 수억 건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케데헌 광풍’이 불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귀신 잡는 걸원탑토토이 어떻게 글로벌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1. K-팝과 K-오컬트의 정교한 융합

‘케데헌’은 영화 초반부터 이빨을 드러낸 악마와 강렬한 K-팝, 다채로운 액션을 몰아치듯 선보이며 영화가 가진 비기를 가감 없이 선보인다. 탄탄한 글로벌 팬층을 가진 ‘K-팝’과 악마와 무속을 포함한 ‘K-오컬트’에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성공시킨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의 제작 노하우가 잘 버무려졌다. 케데헌은 하나하나 익숙한 것들이 잘 기획되고 조합됐을 때, 어떤 새로운 것이 탄생하고 원탑토토 사로잡을 수 있는지를 몸소 보여준다. 그야말로 기획력의 승리다.

뉴욕타임스(NYT)는 “어쩐지 유치한 로그 라인을 뒤로하고서라도, 영화는 매력적이고, 독창적인 원탑토토관을 제시한다”면서 “제대로 활용된 음악과 눈길을 사로잡는 미술적 소재, 그리고 몰입감 있는 액션 시퀀스는 역동적인 스토리텔링을 제공한다”고 평가했다.

그중에서도 단연 K-팝의 역할이 가장 크다. 영화를 쓰고 연출한 매기 강은 “데몬 헌터스의 정체를 숨길 수 있는 방법을 찾던 과정에서 ‘K-팝’을 떠올렸다”고 했다. K-팝이 영화의 핵심이면서 마지막 조각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한국인이 만들고 부른 노래와 팬 사인회, 응원봉 등 팬덤 문화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영화 속 ‘K-팝’은 케데헌의 정체성이자 흥행의 핵심 요인이 됐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등장하는 ‘사자 보이즈’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등장하는 ‘사자 보이즈’ [넷플릭스]

제작진들이 극 중 대립 관계에 있는 걸원탑토토 헌트릭스와 보이원탑토토 사자보이즈의 노래에 상당한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히 K-팝 흉내 내기에 그친 것이 아니라 K-팝 문법을 완벽히 구현해 두 원탑토토에 K-팝 DNA를 탑재시킨 것이다. 그래서 케데헌 OST를 들으면 ‘실제 존재하는 K-팝 아이돌 000의 노래 같다’, ‘신인 아이돌 000의 노래 아니냐’는 반응이 쏟아진다. 이는 OST 작업에 빅뱅, 블랙핑크의 음악을 만들어 온 더블랙레이블의 테디 사단과 방탄소년단(BTS), 트와이스와 작업한 린드그렌, 투모로우바이투게더와 협업한 스티븐 커크, 제나 앤드류스 등이 참여해 가능했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영화의 흥행에는 K-팝 팬덤이 구심점으로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면서 “팬덤 특유의 문화를 효과적으로 담아내고 있는 만큼, 누구보다 팬덤들이 영화를 즐겁게 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렬한 액션과 영화 곳곳에 배치된 짧고 화려한 퍼포먼스가 ‘숏폼 소비 세대’의 콘텐츠 소비 방식을 정확히 겨냥한 것도 주요했다.

여기에 글로벌 팬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K-오컬트’라는 전통문화를 정교하게 융합시켜 유쾌하면서 독창적인 원탑토토관을 만들어 낸 것도 ‘신의 한 수’ 였다. 영화에는 도깨비·물귀신·저승사자 같은 K-귀신이 등장하고, 데몬 헌터스의 시초도 한국의 무당이라고 소개한다. 강 감독은 “한국 문화를 보여주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려던 중, 가장 처음 떠오른 것이 한국의 풍부한 신화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작품에 나오는 악마들은 서양의 악령들만큼 무섭거나 섬뜩하지 않다. 짜릿하긴 하지만 공포스럽지 않고, 오히려 친근하다. 윤석진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서양에서 오컬트는 다소 공포의 대상이지만, 우리의 것에는 익숙하고 친숙한 면이 있다. 무섭지 않게 다룰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장점”이라면서 “그것이 익숙한 K-팝과 시너지를 내면서 차별화된 콘텐츠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2. ‘국뽕’ 빠진 ‘K-코드’로 재밌게 풀어

영화는 BTS와 영화 기생충, 드라마 ‘오징어게임’, 작가 한강 등으로 원탑토토인의 관심이 쏠린 대한민국, 그중에서도 중심인 서울을 배경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 등장인물의 코스튬부터 서울의 거리, 각종 한국 음식은 물론, 방송가 뒷풍경, 일상생활 등까지 모조리 담았다. ‘디테일의 장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외국인에게는 한국이란 나라의 새로움을, 내국인들에겐 ‘국뽕’을 뺀 담백한 우리의 정서를 만날 수 있어 반갑다.

우선 이야기가 펼쳐지는 장소적 배경은 우리가 익히 아는 서울의 명소들이다. 헌트릭스가 묵는 호텔은 잠실 롯데타워, 공연장은 잠실 주경기장을 연상케 한다. 또 인물들이 오가거나 악마를 퇴치하는 장소도 남산타워, 낙산공원 성곽길, 한옥마을, 명동 거리, 광화문, 삼성역 등이다. 한강이 펼쳐진 아름다운 야경은 딱 그대로 서울의 모습이다.

이들이 입고 나오는 의상도 우리 전통의상에서 많이 차용했다. 주인공인 걸원탑토토 헌트릭스는 한복 치마와 저고리를 무대의상이나 외출복으로 입고 등장한다. 라이벌인 보이원탑토토 사자보이즈는 갓과 도포가 그들의 트레이드 마크다. 헌트릭스가 악령을 물리치기 위해 사용하는 무기는 조선시대 유물에서 가져왔다. 리더 루미의 주무기는 사귀를 베고 재앙을 없애는 ‘사인검’, 미라는 반달 모양의 날과 긴 자루가 특징인 ‘곡도(월도)’, 조이는 무당이 굿을 할 때 쓰는 ‘신칼’을 들고 등장한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등장하는 호랑이 ‘더피’와 까치 ‘서씨’. 국립중앙박물관 ‘까치 호랑이 배지’. [넷플릭스·국립중앙박물관]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등장하는 호랑이 ‘더피’와 까치 ‘서씨’. 국립중앙박물관 ‘까치 호랑이 배지’. [넷플릭스·국립중앙박물관]

남녀 주인공의 메신저 역할은 조선시대 민화에 자주 등장하는 호랑이와 까치가 한다. 호랑이 ‘더피’는 조선시대 민화 ‘작호도’의 형상을 하고 있고, 까치 ‘수지’는 갓을 쓴다. 악마들은 도깨비 탈을 쓰거나 도깨비 방망이를 든다. 덕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선 케데헌에 나오는 ‘까치 호랑이’ 배지를 사기 위해서 ‘오픈런’(개장 전 줄서기)과 같은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특히 헌트릭스의 일상은 우리네 보통 일상과 다르지 않다. 고음 발성에 실패한 루미가 멤버들과 설렁탕을 먹으며 위로를 받고, 더 이상 자신을 숨기지 않기로 한 루미가 후반부에 멤버들과 처음 대중탕에 몸을 담그고 피로를 푸는 장면은 익숙하면서도 정겨운 장면이다. 또 헌트릭스가 공연을 앞두고 대기실에서 먹는 김밥, 순대, 라면, 떡볶이 등도 우리에겐 익숙한 분식 메뉴이지만, 다른 나라에선 찾아볼 수 없는 한국적 문화다. 심지어 한국 사람들만 하는, 식당에서 수저을 놓을 때 냅킨을 까는 장면도 나온다.

이밖에도 사자보이즈가 선배 원탑토토 혼트릭스에게 허리를 90도로 굽혀서 하는 ‘폴더 인사’, 공연장에서 알록달록 불이 들어오는 응원봉을 흔들고, 휴대폰과 플래카드에 ‘우윳빛깔 루미’ 같은 한국어 문구를 띄우고 환호하는 장면도 눈에 띈다. 이처럼 케데헌은 자칫 억지가 될 수 있는 ‘K-코드’가 한국인들에겐 과하지 않고, 해외 관객들에겐 새롭지만 어색하지 않게 받아들여지면서 국내외 모두 흥행에 성공한 것으로 풀이된다.

#3. 글로벌 ‘메인 스트림’으로서 K-컬처, 그리고 진화

케데헌 광풍은 K-컬처가 변방의 신기한 볼꺼리가 아닌, 글로벌 대중문화에 깊숙이 파고들어 새로운 장르가 됐기 때문에 글로벌 신드롬으로 확산할 수 있었다는 시각도 있다. 한국 문화를 다룬 판타지 액션 애니메이션은 이젠 한류, 애니메이션에 무관했던 관객층까지 ‘K-컬처’로 물들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케데헌 제작에 관여한 짐 로포 리퍼블릭 레코드 회장은 빌보드와의 인터뷰에서 “케데헌은 이전에 플랫폼에서 K-팝 콘텐츠를 시청하지 않았던 시청자들에게도 어필하고 있다”며 “더 이상 ‘K-팝 현상’이 아닌 ‘팝 문화 자체’의 새로운 중심”이라고 평가했다.

사실 ‘K-컬처’는 글로벌 대중문화의 중심부에 있다. BTS, 블랙핑크 등 K-팝 원탑토토들의 빌보드 점령은 더이상 낯선 뉴스가 아니다.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과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흥행 및 에미상 수상은 한국 문화가 글로벌 대중 문화의 메인스트림에 진입했음을 알렸다. 이어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과 ‘어쩌면 해피엔딩’의 토니상 수상은 기존 영어권 중심의 문학과 공연예술의 영역에서도 한국식 서사·작품이 가진 작품성과 영향력이 인정받고 있음을 증명해 냈다.

하나부터 열까지 한국 문화를 촘촘히 입힌 미국산 애니메이션의 흥행은 한국 문화가 원탑토토 시장에서 트렌디한 주류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방증이다. 강 감독은 “문화적으로 온전히 한국적인 영화가 미국 회사에 의해 제작이 된다는 사실은 한국 문화가 가진 강력한 힘을 나타내주는 증거”라면서 “한국 문화가 얼마나 많이 발전해 왔는지, 한국이 문화적으로 얼마나 큰 힘을 가졌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블랙핑크(위)와 케이팝 데몬 헌터스(아래)  [YG엔터테인먼트, 넷플릭스]
블랙핑크(위)와 케이팝 데몬 헌터스(아래) [YG엔터테인먼트, 넷플릭스]

케데헌은 콘텐츠 제작과 소비 과정에서 존재하는 수많은 경계들을 무너뜨리기도 했다. 악마로 꾸려진 가상의 아이돌이 현실에서도 K-팝 아티스트처럼 소비되며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사라졌고, 철저하게 산업화된 아이돌의 원탑토토에 무속이란 미신이 침투시켜 장르적 경계도 허물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한국적인 것들이 미국에서 글로벌 장르 문법으로 재탄생하며 ‘K-콘텐츠=메이드인코리아(Made in Korea)’라는 공식마저 완전히 파훼했다. ‘K-컬처’가 글로벌 시장에서 국경과 형식을 뛰어넘은 제작 언어이자, 보편적 장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증거다.

정 평론가는 “전 원탑토토적으로 어느 문화가 ‘힙하냐’를 묻는 시대이고, 한국문화가 글로벌하게 세련된 문화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 케데헌이 증명해 냈다”며 “글로벌 시장은 ‘K-콘텐츠’가 어디서 만들어졌냐는 것보다는 콘텐츠적으로 잘 만들어졌냐에만 관심이 있다. 이제는 국적이 아니라 콘텐츠가 문화를 제대로 잘 다루고 있냐가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위기감도 감지된다. ‘K-콘텐츠’의 생산주도권을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문화의 보편성이라는 차원에서 케데헌의 탄생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짚었다.

윤 교수는 “외국에서 한국 문화를 다룬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은 문화적 보편성이라는 차원에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면서도 “반면 제작 측면에서는 이미 한국 시장이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하청업체처럼 재정의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는 그러한 하청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일종의 징후로도 볼 수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