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명훈의 음식 이야기는 음악이 된다”…지휘와 요리가 닮았다? [페스타토토]
[페스타토토=고승희 기자] 평소와 다름없는 느긋한 걸음걸이. 정명훈 지휘자가 무대 위로 여유롭게 걸어오자, 객석에선 엄청난 함성과 박수가 터졌다. 연주는 시작도 전이었지만 이미 카타르시스를 마주한 박수였다. 지난 2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KBS교향악단과의 브람스 교향곡 3번, 4번 공연에서다. ‘지휘 거장’ 정명훈(72)이 이탈리아 라스칼라 극장을 이끄는 최초의 동양인 음악감독으로 선임된 이후 열린 첫 한국 공연이었다. 관객들의 뜨거운 환호에 그는 살며시 미소를 띠며 포디움에 올랐다. 박수가 채 잦아들기도 전에 시작한 브람스 3번. 응축된 소리가 나른하게 이어지는 음악 안에서 정명훈은 KBS교향악단 단원들이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는 여백을 허용했다. 3번은 날렵함 대신 감성을 채웠고, 4번은 정교하면서도 묵직한 세공이 장악했다. 2, 3악장의 아름다운 서정은 4악장까지 여운을 끌고 갔다. 이번 공연에선 도쿄필의 미우라 아키히로 악장, 이스라엘 필하모닉의 플루트와 클라리넷 수석이 투
10분 전직역만 하면 하수, 번역이 쉬운 줄 알았니? ‘공연계 투톱’ 황석희 vs 김수빈 번역법 [페스타토토]
#1. “널 짓누르던 삶도, 널 막지 못해, 이젠 떠나 멀리, 늦지 않았어, 저 배를 타, 내 손을 잡아, 저 바다 너머 우릴 위한 그곳으로“ (번역가 황석희의 뮤지컬 ‘원스’ 중 ‘폴링 슬롤리(Falling Slowly)’ 한국어 가사) #2. “별을 넘어, 절대 멈추지 마, 마음이 원하는 대로, 이 순간을 꼭 잡아, 어디든 가볼래, 그럼 어때, 우리만의 별빛 너머로” (번역가 김수빈의 뮤지컬 ‘알라딘’ 중 ‘어 홀 뉴 월드(A Whole New World, 새로운 세상)’ 한국어 가사)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명곡이 한국어 노랫말을 입었다. ‘잘해봐야 본전’, ‘삐끗하면’ 욕 잔치가 될 위험천만한 작업. 한국 공연계 투톱 번역가인 황석희·김수빈도 그 순간만큼은 머리를 싸맸다고 한다. 지금까지 100여편의 뮤지컬을 번역한 김수빈은 “애니메이션부터 영화까지 너무나 잘 알려진 빅 히트 곡이 ‘알라딘’의 ‘어 홀 뉴 월드’였기에 너무나 부담스러웠다”며 “모두가 다 ‘아는 맛’을 번역할
2025.05.18 08:00기타 박살나고 줄 끊어지고…‘원스’ 위험천만 핸드싱크 순간까지? [페스타토토]
[페스타토토=고승희 기자] “조감독님, 악기가 좀 깨졌어요.” 무대가 한창이던 시간, 뮤지컬 ‘원스’의 서강희 음악 조감독은 급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날은 ‘비번’이었다. “배우가 피아노에서 뛰어내리다 기타가 깨졌다”는 전화였다. “농담 삼아 ‘그러면 접착제로 붙여서 하면 되겠네요’라고 이야기했더니, 상황이 금세 심각하게 돌아가더라고요. 한 번 봐줘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좀 깨졌다’는 악기의 상태를 확인하고 서강희 조감독 역시 적지 않게 놀랐다고 한다. “막상 보니 걸레짝이라고 해도 될 만큼 박살이 났다”는 것이다. 2007년 개봉한 동명의 아일랜드 영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원스’(5월 31일까지, 코엑스 아티움)는 낯선 두 남녀가 만나 ‘음악’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하는 과정을 담아낸 작품이다. 전문 연주자로 구성된 대규모 오케스트라 대신 12명의 배우가 기타, 피아노, 바이올린, 만돌린, 드럼, 첼로 등 다양한 악기를 연주한다. 배우들은 1년에 걸쳐 무대 준비 기간
2025.05.04 12:30“악기비만 1억원…두 소절 부르려 에릭 클랩턴 시그니처 구매”…‘원스’ 진짜 주인공은 ‘악기’ [페스타토토]
[페스타토토=고승희 기자] 낡고 오래된 펍(PUB), 따뜻한 조명 아래로 더블린에 사는 무명의 뮤지션 가이(guy)와 체코 출신의 이주민 걸(girl) 나란히 앉는다. 첫 만남에 ‘급진전’하는 관계. 청소기를 고치다 말고 ‘가이’의 음악 이야기를 듣는 ‘걸 ’. 가이는 상처를 감춘 ‘다정한 개그캐’인 걸에게 속절없이 빠져든다. “자고 가요.” 아뿔싸, 급해도 너무 급했다. 그 때, 우측 벽면에 우두커니 앉아있던 안드레이(김민성)에게 조명이 들어온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기타 연주로 부르는 노래. “그렇게~서두르면 ~ 안돼.” 노래 제목도 딱히 없다. 애드리브처럼 들어간 단 두 마디에 객석은 웃음바다가 된다. 뮤지컬을 번역한 황석희는 “오리지널 공연에선 웃음이 터지지 않는 장면인데 한국 공연에서만 빵빵 터진다”고 귀띔했다. ‘신 스틸러’가 돼버린 이 곡을 부르기 위해 배우 김민성은 에릭 클랩턴 시그니처 어쿠스틱 기타를 손에 들었다. 서강희 악기 조감독은 “딱 두 번 부르기 위해 이 악기
2025.05.04 12:30콜드플레이 공연에 나온 외계인 밴드 ‘위어도스’…인형 뒤엔 한국인이? [페스타토토]
[페스타토토=고승희 기자] 밴드명 위어도스(Weirdos), 국적(?)은 우주 어느 별, 소속사는 미국 애틀랜틱 레코드. 브루노 마스·에드 시런·블랙핑크 로제와 한솥밥을 먹는 사이. 물론 콜드플레이의 레이블이기도 하다. 고양종합운동장 위로 별들이 내려앉자, 이 ‘사랑스러운 우주 밴드’가 무대로 등장해 ‘휴먼 하트(Human Heart)’를 부르기 시작했다. 보컬 엔젤 문의 목소리는 위로였다. 광활하고 복잡한 우주에서 먼지 같은 인간은 누구나 결점이 있다고. 그래서 인간의 마음은 언제든 부서질 수 있지만 “부서지지 않았으면, 도망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신비로운 음성은 아득한 은하 너머의 메시지처럼 울려 퍼진다. 인간의 마음을 어루만지다가도, 뜬금없이 마음을 고백하듯 엔젤 문과 동크(드러머)는 서로의 눈을 마주하며 달달한 사랑을 확인한다. 8년 만에 내한한 세계적인 밴드 콜드플레이의 ‘라이브 네이션 프레젠츠 콜드플레이 : 뮤직 오브 더 스피어스 딜리버드 바이 디에이치엘(LIVE
2025.04.20 08:00[영상]‘재패니즈 인베이전’…韓 탭댄스 콩쿠르, 日이 점령[페스타토토]
[페스타토토=고승희 기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객석을 향해 씩 웃더니, 깃털처럼 가벼운 몸짓으로 두 발끝을 세워 춤의 시작을 알린다. 제임스 브라운의 ‘아이 갓 유(I got you)’에 맞춰 경쾌하게 연결되는 리듬의 향연. 소울 가득한 목소리가 부르는 펑키한 노래에 맞춰 가뿐하게 근육을 털어내듯 팔다리가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지난 6일 열린 서울탭댄스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한 토모키 츠므라야. 슬랩스틱 코미디언 못잖은 온몸의 유쾌함에 객석이 들썩였다. ‘재패니즈 인베이전(Japanese Invasion)’이었다. 압도적인 수준 차에 모두가 놀랐다. 탭댄스를 전혀 알지 못하는 관객이 보기에도 우승자 토모키 츠므라야를 비롯해 여유로운 그루브로 매끄러운 탭을 선보인 마사시, 빨간 꽃망울처럼 피어오른 유키 오미, 드라마틱한 움직임과 기교의 절정을 보여준 사토루 유츠까지 모두 ‘넘사벽’의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4회차를 맞은 서울탭댄스콩쿠르는 이들에게 완전히 정복당했다. 토모키 츠므라야(
2025.04.13 08:00“맞지 않는 공간은 ‘돼지 목의 진주목걸이’”…롯데 vs 부천 소리 차이는? [파이프오르간의 세계][페스타토토]
공간·제조사·장인마다 음향 차이 뚜렷 롯데콘서트홀은 강렬한 선명한 음색 부천아트센터는 부드럽고 낭만적 색채 [페스타토토=고승희 기자] 3, 2, 1. 공연장의 문이 열리면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도파민을 충전하는 붉고 푸른 의자들 넘어 압도적 위용을 자랑하는 은빛의 파이프. 누구라도 반하지 않을 수 없는 자태와 웅장한 아름다움이 주는 감동으로 인해 이 거대한 악기엔 공연장의 얼굴이란 수사가 따라다닌다. 오르간은 ‘짓는다’(Build)고 표현한다. 집을 짓고, 밥을 짓듯, 시(詩)를 짓는 것처럼 충분한 시간을 들여온 마음과 정성을 담아 만드는 악기이기 때문이다. 국내 최고의 파이프오르간 빌더(builder·짓는 사람)로 꼽히는 안자헌 마이스터는 “100여년 전만 해도 (파이프 오르간) 건축 기술이 그리 발달하지 않아 당대 건축 양식을 모방해 만들기도 했다”며 “요즘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모양을 영상으로 먼저 구현한 뒤 설치한다”고 말했다.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2025.04.06 11:28[영상]‘인터스텔라’의 그 소리 …‘신의 음성’을 닮은 ‘악기의 제왕’ [파이프오르간의 세계][페스타토토]
수천 개의 파이프가 만드는 웅장한 소리 온도 18~20℃·습도 40~70%로 ‘관리’ 작동 오류도 생길 수 있어 세심함 필요 [페스타토토=고승희 기자] 인류를 실은 우주선이 거대한 미지를 향할 때, 수천 개의 파이프가 경이로운 소리를 쏟아낸다. 끝을 알 수 없는 무한한 우주의 신비, 그것을 향한 인간의 두려움과 고통이 파이프 오르간을 통해 시공을 확장한다. 성스러운 종교음악을 노래하던 악기가 들려주는 ‘태고의 소리’. 아름다운 선율이 광활한 공간으로 인간을 끌어당기면, 커다란 파이프 속의 공기 소리가 작은 점에 불과한 인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그린다. 영화 ‘인터스텔라’가 담아낸 ‘우주의 음악’이다. 영화음악가 한스 짐머는 파이프 오르간이 주인공이 된 OST(오리지널 사운드 트랙)를 만들기 위해 2년을 몰두했다. 마침내 모든 음악이 완성됐을 때, 그와 ‘인터스텔라’의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은 영국 런던의 템플 교회에서 해리슨 앤 해리슨 사의 4단 건반 오르간으로 OST를 녹음했다. 연주
2025.04.04 16:45[영상]“잠실역 3번 출구에서 소원을 말하라고?!”…‘알라딘’의 성공은 철저한 ‘현지화’ [페스타토토]
브로드웨이 스테디셀러 ‘알라딘’ 韓 초연 한국적 정서 내재한 ‘초월 번역’으로 인기 말맛 살린 가사·현실 빗댄 골계미도 매력 [페스타토토=고승희 기자] ‘램프의 요정’ 지니인지, 아그라바의 상인인 척 ‘분신술’을 쓴 지니인지, 굳이 ‘정체’를 모호하게 설정한 ‘그’의 등장. 평생을 걸쳐도 닳지 않을 휘황찬란한 금은보화로 치장한 지니가 ‘양은 주전자’를 들고 말한다. 다소 얌체 같아 보이는 수염도 붙였다. “안녕, 친구들! 어서와. 여긴 전설의 아그라바야. 미안, 이건 내 텀블러야 (중략) 지금부턴 우린 이 요술 램프의 고향인 아그라바를 둘러볼 거야. 꽉 잡아 이제 들어갑니다.” (‘알라딘’ 첫 장면 지니의 대사 중) 이를 어쩌나. 본격적인 시작도 전에 객석에선 웃음이 터진다. 일종의 ‘워밍업’이자, ‘방향성 제시’였다. 요술램프라고 설정된 양은 주전자를 들고, 그것을 ‘텀블러’라고 우기며 ‘가스라이팅’하는 요정 지니의 뻔뻔함에 관객은 야무지게 꼬았던 팔짱을 풀고 시원하게 웃는다. 뮤
2025.03.09 08:00‘매일이 생방송’ 영화인가 브이로그인가…카메라는 왜 공연과 만났나 [페스타토토]
영상과 만난 연극, 뮤지컬, 오페라 카메라로 생생히 담아낸 영상미학 클로즈업으로 섬세한 감정 전달 1분 1초, 1㎜의 오차도 허용 안해 [페스타토토=고승희 기자] “나만 제자리야, 다들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만 혼자 제자리에서 벽에 머리만 찧고 있어.” 이제 막 서른이 된 ‘젊은 작곡가’가 있다. 수년째 ‘유망하다’는 찬사를 받지만, 한 번도 꿈을 펼치지 못한 청춘. 불안이 그를 엄습한다. 이대로 멈춰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 쓸모를 증명하지 못했다는 자괴, 이루지 못할 것 같다는 절망…. 수만의 감정이 그의 얼굴 위에 싸여 무대 위 스크린을 가득 메운다. 달린다. 달리고 또 달린다. 친구의 투병을 알게 된 후, 말로 다 표현 못 할 슬픔을 안고 뉴욕의 거리를, 공원을 뛰어간다. 클로즈업한 얼굴로 내뱉는 독백 속에서 무대가 보여주지 않은 풍광이 그림처럼 떠오른다. 뮤지컬 ‘틱틱붐’, 브로드웨이의 천재 작곡가로 ‘렌트’를 쓴 조나단 라슨의 자전적 이야기다. 뮤지컬 무대로 ‘라이브 카
2025.02.02 2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