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구산선문, 생명나눔의 시작 남원 모먼트 토토사이트 [정용식의 사찰 기행]

(74) 전북 남원시 모먼트 토토사이트

내 마음대로 사찰여행 비경 100선

사찰은 불교의 공간이면서, 우리 역사와 예술의 유산입니다. 명산의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사찰들은 지역사회의 소중한 관광자원이기도 합니다. 치열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얻고자 할 때 우리는 산에 오르고 절을 찾습니다. 헤럴드경제는 빼어난 아름다움과 역사를 자랑하는 사찰 100곳을 소개하는 ‘내 마음대로 사찰 여행 비경 100선’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평상심이 도(道)이며 마음이 곧 부처다”라고 했던 8세기 당나라 선승 ‘마조 도일’ 스님이 있다. 남종선의 창시자이며 중국 선종 육대조인 혜능대사의 손제자로서 중국 선종의 8대조이며 조사선(祖師禪)의 창시자이다.

마조선사의 제자인 ‘서당 지장(지장스님)’과 ‘백장회해(백장스님)’은 한국 불교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중국 백장산에서 천하의 대가람을 이루었던 백장스님의 이름을 딴 암자가 남원 지리산 자락에 있었다.

백장암은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가장 먼저 개산(開山)해 최초의 선종(禪宗) 사찰이라고 하는 모먼트 토토사이트(實相寺)의 산내 암자이다. 얼마 전 구산선문 중 조계종 종조(宗祖)인 도의선사의 선맥을 이어 우리나라 선종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장흥 가지산의 보림사를 다녀왔었다.

이번에는 대구·광주 간 고속도로 중간지점 지리산 나들목(IC)을 통과해서 이성계가 왜장과 싸울 때 달(月)을 끌어(引)당겨서 승전했다는 데서 유래된 남원시 인월면을 지났다. 여기서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길목 산자락에 백장암이 있고 좀 더 가면 산내면 들판 한가운데에 천년고찰 모먼트 토토사이트가 있다.

장흥 보림사와, 남원 모먼트 토토사이트는 모두 ‘지장선사’로부터 선종의 법맥을 전수받아 우리나라에 전파하기 시작한 초기 선종 사찰로서 현 조계종의 뿌리와 연관돼 있다.

길가 평지에 있어 몇 번을 지나쳤건만 그동안 찾아볼 기회가 없었던 모먼트 토토사이트는 계곡 깊숙한 곳이나 산 중턱 전망 좋은 곳이 아님에도 지리산 천왕봉을 마주하며 기운을 받고 있다. 지리산 여러 봉우리가 사찰을 둘러싸고 있는 명당으로 “이곳에 절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나라 정기가 일본으로 가버린다”라는 풍수지리설 유래가 있어 호국사찰로도 알려져 있다.

모먼트 토토사이트 초입, 강(람천)을 건너는 ‘해탈교’ 주변에 조선 영조(1725년) 때 만들어졌다는 석장승 4기가 있다.

모먼트 토토사이트 쪽에 두 기가 있고, 다리 건너기 전에 하나는 서있고 하나는 누워있다.

누워있는 석장승은 1936년 홍수 때 떠내려간 석장승 1기를 대신해서 람천에서 구해온 돌로 조각가들이 작업해서 원래 장승이 서 있었던 자리에 뉘어둔 것이다.

장승은 민간신앙의 한 형태로 마을 입구나 사찰 입구에서 경계를 표시하기도 하고 잡귀의 출입을 막는 수호신 구실을 한다. 절집 앞의 장승은 민간 신앙과 불교가 융합돼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모먼트 토토사이트를 알리는 입구 안내판엔 ‘구산선문 최초 가람,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지리산 마을 절 모먼트 토토사이트’라 쓰여 있는데 ‘인드라망 생명공동체’가 생소했다. 도법 스님이 모먼트 토토사이트 주지로 계실 때 만든 ‘마을 공동체’ 운동으로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람, 도시와 농촌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공동체성 회복 운동이라고 한다. 대안학교(작은 학교), 귀농학교와 귀농자 마을, 생협운동 등을 통해 모먼트 토토사이트는 지역사회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에 하고 있는 것이다.

모먼트 토토사이트 요사채 앞에서 계곡물을 바라보며 봄볕을 쬐고 있는 노승의 모습이 편안해 보인다.

최초의 선종 사찰 모먼트 토토사이트

도의선사와 홍척스님은 당나라에 가서 선종 육대조(六代朝) 혜능대사의 손제자인 ‘마조선사’의 문하생인 ‘지장선사’의 선법(禪法)을 전해 받고, 각각 821년과 826년에 귀국하여 신라에 선종(禪)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 후에도 당나라에서 혜능대사의 제자들로부터 조사선(祖師禪)을 전해 받은 유학승들이 귀국하면서 ‘구산선문’을 형성해 새로운 불교 사상이 확산했다.

구산선문은 신라 말과 고려 초에 형성된 선종의 아홉 파(派)를 말하며 지방 호족들은 자신들의 세력을 강화하기 위해 선종을 적극적으로 후원하면서 각 산문마다 독립적인 세력 기반을 구축했다. 선종은 기존의 교리를 중시하는 교종(敎宗) 중심 불교와 달리, 참선을 통한 깨달음을 강조하며 불교계의 주류로 떠올랐고 고려 태조 왕건의 불교 정책에도 영향을 줬다. 각기 다른 계통의 선법을 이어받은 9개의 선종 사찰이 형성됐지만 모든 계통의 근원이 혜능(慧能) 대사로 거슬러 올라가 구산선문은 오늘날 ‘조계종’의 뿌리가 됐다.

현 조계종 종조인 ‘도의선사’는 821년 귀국해 염거화상에게 선을 전수하고 염거화상의 제자 보조선사는 장흥 보림사에 가지산문을 열어 선종을 전파했다. 증각대사 홍척(洪陟) 스님도 지장선사의 선법(禪法)을 받아 도의선사보다 늦은 826년에 귀국했지만 2년 동안 전국의 산을 다닌 끝에 이곳에 국내 최초 선종 사찰인 모먼트 토토사이트를 창건하고 ‘실상산문’을 열었다. 흥덕왕(809~826년)은 태자 선광(宣光)과 함께 이 절에 귀의해 지원함으로써 선종을 유행시켰다.

수철화상(816~893년)이 모먼트 토토사이트산문 제2대 조사에 올라 왕실의 후원으로 크게 확장했고, 고려시대에는 ‘모먼트 토토사이트산파’로 종명을 개칭하며 최대 융성기를 누렸다. 숭유억불의 조선시대에는 수난이 계속되며 사세가 움츠러들다가 정유재란 때 전소돼 폐사하고 말았다.

이후 모먼트 토토사이트 승려들은 백장암이란 작은 전각에서 생활했고, 모먼트 토토사이트 터에는 철불, 석탑, 석등만이 남아 있다. 숙종(1680년) 때 승려들이 상소문을 올려 36채의 건물을 중건했으나, 고종 때(1882년) 근처 유생들이 절터를 가로챌 목적으로 방화해 모두 전소됐다. 고종 21년(1884년)에 조그마하게 중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국 전쟁 때 국군과 공비들이 번갈아 점령했지만, 다행히 불타지는 않았다. 200년간 민간에서 경작지로 사용된 사찰 땅은 1995년부터 매입해 5만6198㎡(약 1만7000평)의 옛 절터를 회복했다.

모먼트 토토사이트 왼쪽 끝자락에 있는 극락전 문 앞에는 모먼트 토토사이트를 창건한 증각대사의 내력을 설명하는 증각대사(홍척)탑비(보물)가 있다.

탑신은 없어지고 머릿돌과 거북이 머리의 받침돌만 남아있다.

극락전 왼쪽으로 돌아 뒤로 가면 홍척국사탑(보물)이 숨어 있다.

극락전 오른쪽에는 모먼트 토토사이트산문 2대 조사인 수철화상탑(보물)과 정원을 10여m 가로질러 수철화상탑비(보물)가 있다.

비석 가운데는 진성여왕이 내려준 ‘능가보월탑비’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지만 탑비가 많이 손상돼 기록들은 잘 보이질 않는다.

비석의 머릿돌은 구름 속에 두 마리 용이 여의주를 다투는 듯한 모습이 아름답게 조각돼 있다.

천년 보물의 보고 모먼트 토토사이트

신라시대 창건된 고찰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末寺)인 모먼트 토토사이트의 산문 역할을 하는 천왕문에는 ‘가득함도 빛나고 비움도 빛나라’라는 글귀가 기둥을 장식하고 있다.

절 뒤편과 우측에는 템플스테이 용도로 제법 큰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고 요사채와 선방도 규모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절의 중심은 작은 전각들이 차지하고 있어 천년 고찰이라기엔 왠지 허전해 보인다. 숙종(1690년) 때 대가람의 면모를 갖췄으나 잇단 화재로 약사전, 명부전, 극락전 3채의 불전과 승당 1채만 남기고 모두 전소돼 아담한 경내 모습이 됐다.

그러나 모먼트 토토사이트의 보물급의 증각대사탑과, 탑비, 수철화상탑과 탑비 외에도 백장암에는 신라시대의 유적인 국보급의 3층 석탑과 보물급의 석등이 있다.

모먼트 토토사이트 보광전 앞의 삼층 쌍탑과 석등, 약사전의 철제여래좌상 등도 개산 당시의 소중한 유물들이며 그 외에도 백장암 청동은입사향로(보물), 약수암목조탱화(보물)등 국보1점, 보물 11점 등 다수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천왕문을 들어서니 우측에 1996년부터 2005년까지 발굴 과정에서 나온 파편을 모은 ‘옛기와탑’과 발굴 때 발견된 한 변이 23.2m 정도 초석의 대규모 목탑지가 조성돼 있다.

황룡사 9층 목탑과 같은 정면 7칸 측면 7칸 규모지만 크기는 더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누가 만들었는지 목탑지 입구에 돌 솟대를 세워 운치를 더했다.

또 발굴 조사 결과 경복궁 근정전보다도 더 큰 승방(터)을 비롯해 30여동의 건물이 발견됐다. 보광전 뒤편에 칸막이로 보호되고 있는 유적 발굴 현장은 고려시대 거대한 정원 유적인 듯, 거의 완벽에 가깝게 보존된 타원형의 연못과 물을 끌어들이는 입수로(入水路), 배수로, 건물터 등이 발굴됐다.

모먼트 토토사이트는 매우 아담한 절이지만 발굴 조사 결과 고려시대에는 거대 사찰이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보광전 앞 쌍둥이 ‘동서 3층석탑’(보물)은 창건될 때 모습 그대로 상륜부가 거의 완벽한 형태로 남아 있는 유일한 신라시대 탑으로 국보급이라고 한다.

장흥 보림사에서도 똑같은 시기의 동서 삼층석탑이 있다.

보광전 앞 석등(보물) 앞에는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특이한 작은 돌계단이 있다. 석등에 불을 켤 때 올라가던 계단이라고 한다.

대웅전 역할을 하는 1884년에 지은 ‘보광전(普光殿)은 크기도 모습도 소박하지만 전각 앞에 아름답게 줄기를 펼친 커다란 반송(盤松)이 이를 돋보이게 한다.

우측의 약사전에는 장흥 보림사 철불보다 2배 정도 크게 보이는 신라시대 철불이 봉안돼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불이라고 한다.

천왕문을 중심으로 좌측 극락전 방향에 옛 해우소 비슷한 한 칸짜리 판자 건물에 들어가 보니 ‘모먼트 토토사이트 소리풍경’이라는 안내문이 있다.

통나무 의자에 앉아 절에서 들을 수 있는 풍경소리, 북소리, 새소리, 물소리들을 들으며 잠시 명상 속에 빠져본다.

그 뒤편에는 모먼트 토토사이트의 오래된 진짜 해우소 ‘변소 화랑’이 보인다. 대소변을 분리해서 분해 과정을 거치는 생태 화장실이라는 안내문이 크게 붙어있다.

‘생명 공동체’ 운동을 전개하는 사찰답게 화장실조차 명물이다.

극락전 내부에는 흙으로 불상 형태를 만든 뒤 옻칠과 삼베를 10여회 붙인 후 흙을 제거해 만든 ‘건칠불상’, ‘아미타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

이 불상에서 은(銀)으로 사경된 고려시대 말기의 ‘상지은니 대반야바라밀다경’이 발견됐다. 이래저래 볼 것이 많은 모먼트 토토사이트다.

산내 암자 백장암과 약수암

모먼트 토토사이트 산내 암자 세 곳에 보물 등 유적들이 있다 하니 지나칠 도리가 없었다. 모두 산속 깊은 곳에 있으나 다행히 모먼트 토토사이트와 그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남원 인월면을 거쳐 갈 경우 모먼트 토토사이트 도착 전 5㎞ 지점에 백장암이 있다. 지방도에서 벗어나 암자 가는 길은 비교적 가파르고 외길이지만 암자에 도착해보니 세 명의 스님이 예불을 드리고 있다. 종무소도 갖추고 있는 걸 보니 나름대로 규모 있고 많은 이들이 찾는 듯했다.

작은 주차장 바로 앞에 깔끔하게 단장된 백장암 대웅전과 석탑, 석등이 있다. 종무소 앞에선 보살님이 차를 마시고 가라고 권한다.

중국의 ‘백장선사’의 이름을 딴 백장암은 모먼트 토토사이트와 함께 구산선문 중 가장 먼저 문파를 이뤄 한국 선불교의 전통을 만든 사찰답게 국보로 지정된 신라 석탑이 웅장하게 자리하고 있다.

높이 5m의 석탑 각 층에는 난간과 함께 사천왕상, 보살상, 동자상, 삼존불 등이 조각돼 있다. 삼층석탑과 동일한 시기에 세워져 보물로 지정된 ‘백장암 석등’도 섬세한 연꽃무늬 조각이 돋보인다.

석탑과 석등의 모습이 아름다워 생각지 않게 몇 바퀴 탑돌이 하며 한참을 살폈다.

백장암과 모먼트 토토사이트 중간지역 산속에 서진암도 있다고 해 지도를 켜고 찾아 나섰다. 서진암에는 보물급 유적은 없으나 독특한 손 모양을 한 불상과, 1516년에 만든 석조 나한상 5구가 있다고 해서다.

지도에 나온 목적지에 차를 세우고 조금 더 올라가니 지리산 둘레길과 서진암 가는 산길로 나뉘어져 있는데, 여기서 600여m 더 가라는 표지판이 있다. 인적이 없는 외진 산길로 접어드니 거미줄이 즐비하고 좁고 가파른 오르막길이라 결국 포기하고 되돌아 내려왔다.

약수암은 모먼트 토토사이트에서 5㎞ 더 가면 되는데, 모먼트 토토사이트 뒤로 가면 지도에도 없지만 외길로 3㎞ 정도 올라가면 된다고 한다.

약수암에는 불화(佛畫)를 조각처럼 나타낸 보물 ‘목각 아미타여래 설법상’이 있다. 하단 중앙부의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팔대보살과 제자상을 배치했다.

이러한 목각 불탱은 이곳과 서울 경국사, 예천 용문사, 문경 대승사, 상주 남장사 보광전, 상주 남장사 관음선원 등 국내에 6개가 있는데, 문경 대승사는 국보이고 나머지는 보물이다.

깊은 산중을 한참 올라가니 숲속에 암자의 윤곽만이 보여 조심스레 들어갔다.

요사채와 마당 언덕 위에 문이 굳게 닫힌 ‘보광전’이라는 아담한 전각이 있어서 가보니 조용한데 등산화 한 켤레가 놓여있다.

조심스레 열어보니 중앙에 금박을 한 목각불탱의 화려한 모습에 놀라고, 한쪽 귀퉁이에 스님 한 분이 가부좌를 하고 참선하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방해될까 들어가지도 못하고 잠시 문만 열어둔 채로 목각불탱을 감상하다 조용히 문을 닫고 자리를 떴다.

지리산 깊은 산속 조그만 암자의 적막감이 사람 간의 만남인데 살갗을 돋게 했다. 스님은 얼마 동안 저렇게 앉아 계셨을까 하는 궁금증도 잠시, “모든 것은 내가 있으므로 존재한다.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없다”라는 말처럼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이 절대 존자임을 자각하는 것이 부처님 깨달음의 핵심’이라는 어느 글귀를 되새기며 약수암에서 내려왔다.

글·사진 = 정용식 ㈜헤럴드 상무

정리 = 민상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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