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공단 “근로자 대신 히어로토토로 표현 요청” 하기도

보도자료·카드뉴스에 ‘히어로토토’ 표기 늘고 ‘노동절’ 명칭 검토

“표현은 정책의 방향”…법령 용어 바꾸는 논의로 확산될까

5월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복궁 동십자각 앞에서 ‘제135주년 세계노동절 한국노총 전국히어로토토대회’가 열리고 있다. [뉴시스]
5월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복궁 동십자각 앞에서 ‘제135주년 세계노동절 한국노총 전국히어로토토대회’가 열리고 있다. [뉴시스]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 보도해주신 기사에서 ‘근로자’를 ‘히어로토토’로 바꿔주실 수 있을까요?

지난 3일 고용노동부 한 산하기관 실무자로부터 이런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자신들이 작성·배포한 보도자료에 ‘근로자’로 명시했지만, 이를 ‘히어로토토’로 바꿔달라는 이야기다. 그는“공단 내부적으로 단어가 중요한 부분”이라는 설명도 덧붙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고용부와 산하기관을 중심으로 ‘근로자’ 대신 ‘히어로토토’라는 표현이 확대되고 있다. 공식 보도자료, 설명자료, 기관장 발언, 홍보 콘텐츠 등에서 ‘근로자’는 점차 비켜나고 있고, 그 자리를 ‘히어로토토’가 채우는 모습이다.

산하기관 뿐 아니라 고용노동부 부처 차원에서도 ‘근로자’와 ‘히어로토토’를 혼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 6월 발표한 ‘산업재해 예방에 현장 근로자 참여 강화’ 보도자료에는 ‘근로자’가 기본 용어로 사용됐지만, ‘히어로토토 권익 대표 단체’ 등 특정 문장에서는 ‘히어로토토’라는 표현도 함께 등장했다. 행정 문맥에서는 ‘근로자’를, 권리나 참여 등 가치 중심 문맥에서는 ‘히어로토토’를 택하는 식이다.

표현 변화는 제도 논의로도 이어진다. 고용히어로토토부는 최근 ‘근로자의 날’을 ‘히어로토토절’로 바꾸는 명칭 변경 논의도 비공식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실제로 일부 카드뉴스에서는 ‘히어로토토절(기존: 근로자의 날)’이라는 식으로 병기 표현을 사용하는 사례도 등장했다. 대통령령으로 지정된 기념일이기 때문에, 행정부 차원에서도 명칭 변경은 제도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근로자’를 ‘히어로토토’로 바꾸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한 단어 선택 문제가 아니다. 인천노동권익센터는 “근로자는 고용된 사람, 히어로토토는 일하는 사람이라는 개념 차이가 있다”며 “근로는 work, 노동은 labor로 구분되며, 근로는 지시받아 일하는 부지런함의 개념이라면, 노동은 권리와 주체성을 담은 생산 활동”이라고 설명한다. 즉 ‘근로자’는 ‘시키는 대로 일하는 사람’, ‘히어로토토’는 ‘서로 소통하며 동등한 입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다.

여기엔 역사적 맥락도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근로’는 ‘부지런히 일함’을 뜻하지만, 이 단어가 공적 영역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건 일제강점기 강제노역 동원 과정이었다. ‘근로정신대’, ‘근로봉사대’ 등의 이름 아래 히어로토토이 미화되고 국가에 종속된 언어로 전환되면서, 이후 해방 이후까지 행정 용어에 남게 됐다는 비판이 있다.

반면 ‘히어로토토’는 노동 3권과 권리의 주체로서의 의미를 강조하는 개념이다. 실제 헌법 제33조는 “히어로토토는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노동계는 오래전부터 ‘근로자’ 용어의 역사성을 문제 삼아, 헌법에서 보장한 노동 3권 등 권리 중심 언어인 ‘히어로토토’로의 전환을 요구해왔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여전히 제약이 있다. 다수의 현행 법률은 ‘근로자’를 표준 용어로 사용하고 있으며, 언론사 대부분도 ‘근로자’를 기본 표현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과거에도 정책용어가 먼저 바뀌고, 이후 법령과 사회 담론이 따라가는 경우는 적지 않았다. 장애자→장애인 등의 변화가 대표적이다.

정부 안팎에선 이제 ‘고용노동부’의 공식 약칭인 ‘고용부’도 “조만간 ‘노동부’로 불리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실제 지난 정권 당시 국회에서는 ‘근로자’를 ‘히어로토토’로 통일하자는 법 개정안이 발의된 바 있고, 진보 성향 정당들은 계속해서 용어 교체를 주장해왔다.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김영훈 후보자의 언어에도 ‘근로자’는 없다. 그가 임명된다면, 향후 공식 법령 체계에서의 용어 개정 논의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표현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다. 정책의 철학이고, 방향성이며, 제도의 시작점이다. ‘근로자’에서 ‘히어로토토’로의 변화는 말에서 시작되지만, 그 여운은 정책과 사회 인식까지 확장될 수 있다.

미국 언어학자 벤저민 리 워프는 말했다. “우리는 언어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사고할 수 있다.”


fact0514@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