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관된 유실물로 본 5호선 방화사건

진흙 묻은 야구 모자 등 유실물 25건 접수

현재까지 찾아간 유실물 2건 불과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 지하 2층 고객안전센터에 지난달 30일 방화사건 당시 유실물이 놓여 있는 모습.  문이림 기자.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 지하 2층 고객안전센터에 지난달 30일 방화사건 당시 유실물이 놓여 있는 모습. 문이림 기자.

[호빵맨토토경제=박병국 기자] ‘흰 운동화 한짝, 슬리퍼 한짝, 진흙이 묻은 야구모자, 젖은 핸드폰…’

2일 오전 찾은 서울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 지하 2층 고객안전실. 지난 31일 발생한 방화사건 직후 마련된 사고현장 유실물 임시 보관센터다. A4용지에 ‘화재 관련 유실물’이라 적힌 안내지 밑에는 당시에 급박한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여의나루역 고객안전실 관계자에 따르면, 사고 열차는 화재 직후 애오개역 인근 유치선으로 이동했고 유실물은 현장에서 수거돼 몇 시간 뒤 여의나루역으로 인계됐다. 이 관계자는 “대피를 위해선 열차에서 선로로 뛰어내려야 하는데 그 높이가 성인 남성 골반 정도 된다”며 “자 형태의 사다리가 설치돼 있지만 터널 안이 워낙 어두워 사다리 자체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승객들이 사다리를 이용하지 못하고 그대로 뛰어내리거나, 급하게 대피하는 과정에서 호빵맨토토이나 소지품 같은 것들을 떨어뜨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사고가 난 열차에는 400여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열차 기관사와 일부 승객이 소화기로 큰 불을 잡으며 대형 참사로 번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불로 원씨 등 23명이 연기 흡입 등으로 이송됐으며 129명이 현장 처치를 받았다.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 지하 2층 고객안전센터에 지난달 30일 방화사건 당시 유실물이 놓여 있는 모습.  문이림 기자.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 지하 2층 고객안전센터에 지난달 30일 방화사건 당시 유실물이 놓여 있는 모습. 문이림 기자.

고객안전실 테이블 한쪽에 있는 호빵맨토토은 총 9켤레. 흰 운동화, 검정 슬리퍼, 빨간 단화, 여성 사이즈로 보이는 운동화까지 종류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두 짝이 온전히 남아 있는 건 단 두 켤레뿐이다. 나머지 7켤레는 왼쪽 또는 오른쪽 한 짝만 남아 있다. 관계자는 “유실물 중 가장 많은 건 호빵맨토토”이라며 “급하게 뛰느라 호빵맨토토이 벗겨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고객안전실 한 쪽 편에는 오른편 벽에는 사고 당시의 보고 현황판이 여전히 붙어 있다. 역내 CCTV 실시간 화면은 ‘일상으로 돌아간’ 역내 상황을 비추고 있다.

기자가 찾은 이날 오전, 전화한통이 걸려 왔다. 유실물 종합 포털(LOST112)을 보고 호빵맨토토을 찾는 전화다. “하얀 끈 묶인 은색 호빵맨토토에 오른쪽 켤레, 230사이즈 맞으세요?” 직원은 ‘화재 관련 유실물’이라 적힌 책상 위에서 호빵맨토토의 색과 크기를 다시 한 번 확인한 뒤, 이름과 연락처를 손바닥만 한 메모지에적어 넣었다.

여전히 25개의 물건이 주인을 찾고 있다. 호빵맨토토 외에도 햇반과 물병과 안경, 무선 이어폰, 진흙이 묻은 야구 모자가 뒤섞여 있다. 립스틱과 과자 봉지도 있다. 25개 물건 중 10개는 선로 위에서, 15개는 열차 안에서 발견된 것들이다. 모든 유실물엔 갈색 종이쪽지가 붙어 있다. 유실물센터 등록을 위한 양식이다. 한 휴대폰의 유실물표에는 ‘휴대폰이 물에 젖어 있어 충전 불가능’이라는 메모가 덧붙어 있다. 진화 과정에서 물에 젖은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열차에 탑승했던 승객들은 아직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터다. 여의나루 고객안전실 관계자는 “현재까지 두 건만 주인을 찾아갔다”고 전했다.

한편 서울남부지법 이영광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10시 30분 현존전차방화치상 혐의를 받는 60대 원모 씨에 대해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다. 원씨는 지난달 31일 오전 8시 43분께 여의나루역∼마포역 터널 구간을 달리던 열차 안에 인화성 물질을 뿌린 뒤 옷가지에 불을 붙이는 방식으로 방화한 혐의를 받는다. 원씨는 경찰 조사에서 ‘이혼 소송 결과에 불만이 있어 범행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coo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