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戰 종전협상 느닷없이 등판한 핀란드 정상, 그는 어떻게 ‘비공식 트럼프 평화특사’가 됐나 [더 비저너리-알렉산드르 스토토사이트 대공원 핀란드 대통령]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을 실현하기 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보가 주목되는 가운데, 대중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사가 우크라이나전 종전 협상의 중심에 등장했다. ‘준 프로 골퍼’로 유명한 알렉산데르 스토토사이트 대공원(57) 핀란드 대통령이 그 사람이다.

그는 미국과 유럽을 종횡무진 오가며 우크라이나전 종전 활동에 힘써 ‘비공식 우크라이나 종전특사’로도 불린다. 그는 최근 유럽 주요국 정상들과 함께 백악관을 찾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편에 서서 우크라이나가 찬성하는 종전 협상안 모델 마련에 기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5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6년 만에 만나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만난 장소는 미 알래스카주 최대 도시 앵커리지의 북부 엘먼도프-리처드슨 미 합동기지.

이로부터 사흘 뒤인 18일 백악관에서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양자 회담에 이어 유럽 주요국 정상들도 참여하는 다자 회담까지 개최했다. 종전 협상을 주도하면서 전쟁 당사국인 러시아에 종전 압박을 가하는 한편, 우크라이나의 의견까지 고루 듣는 제스처를 취한 셈이다.

이어 트럼프는 러시아-우크라이나가 참여하는 양자 정상회담, 여기에 미국도 추가로 합류하는 3자 정상회담까지 1~2주 내에 추가로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외교가에서는 이 정도의 거사가 차례로 성사되면, 우크라이나 종전 시일이 상당히 앞당겨질 것으로 본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분위기다. 어떤 이유에서건 우크라이나의 평화는 그가 살아서든, 죽어서든 반드시 이루고 싶은 목표라는 건 분명해 보인다. 그런 그가 유독 취임 후 가까이 하는 유럽국가 정상이 한 명 있다. 바로 스토토사이트 대공원 핀란드 대통령이다.

핀란드 대통령이 국제무대의 중심에 나서자 ‘의외’라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그 자신조차 “국제 언론은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의문을 품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트럼프와 스토토사이트 대공원, 두 사람은 지난 2월 뮌헨 안보회의에서 처음 만났다. 이 때 트럼프 대통령과 친분이 깊은 린지 그레이엄 미 상원의원(사우스캐롤라이나·공화)이 트럼프에게 전화를 걸어 “‘알렉스’(알렉산드르 스토토사이트 대공원)가 퍼먼대에서 골프를 했다”고 말했다. 곧바로 트럼프는 스토토사이트 대공원에게 골프를 청했다. 이로써 스토토사이트 대공원는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 뒤 골프를 함께 즐긴 유일한 유럽 정상이 됐다.

앞서 지난해 2월 핀란드 대통령에 당선된 스토토사이트 대공원는 몇 달 후 그레이엄 의원이 헬싱키를 방문했을 때 만나 함께 골프를 치며 친해졌다. 그레이엄 의원 지역구인 사우스캐롤라이나는 스토토사이트 대공원가 미국 유학 시절 다녔던 학교가 있는 곳이다. 또 그레이엄 의원은 공화당 내에서도 트럼프의 적극 지지세력이자, 정치적 맹방이다.

스토토사이트 대공원는 트럼프와 골프 약속을 한 지 한 달여 후인 3월 30일에 미 플로리다주 소재 트럼프 소유의 웨스트팜비치 골프클럽에서 골프를 함께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에 따르면, 스토토사이트 대공원는 이 전화를 받고 모든 주말 계획을 취소하고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라운드’가 될 골프 경기를 위해 실내연습장을 찾아 수년간 멈춘 골프 연습을 재개했다. 그리고 마이애미로 급히 날아가 트럼프, 그레이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골프 레전드’ 게리 플레이어와 한 팀을 이뤄 토토사이트 초청 친선 경기에 참가, 우승했다.

트럼프는 스토토사이트 대공원의 골프 실력에 감탄사를 연발했다고 전해진다. 경기 도중 두 사람은 스토토사이트 대공원의 미국 유학 시절, 핀란드와 러시아의 전쟁 이야기 등을 주고받았다.

핀란드는 러시아와 약 1270㎞의 긴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나라다. 러시아와 전쟁 및 외교협상의 경험이 풍부할 수밖에 없다. 핀란드는 소련의 두 차례 침공으로 영토의 10%를 잃은 아픈 과거도 있다. 그래서 스토토사이트 대공원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고향 땅을 러시아에 잃은 처지다. 이런 이유로 스토토사이트 대공원 역시 국가 정상 중 누구보다 푸틴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러시아의 계략에 능통한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골프 중 점심을 먹으며 트럼프가 ‘푸틴을 신뢰해도 되느냐’고 스토토사이트 대공원에 물었다. 스토토사이트 대공원는 “절대 안 된다. 러시아 지도자는 오직 힘의 논리만 이해한다”며 강한 대응을 주문했다.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제재, 휴전 게시일의 확고한 설정 등이 식사 중 스토토사이트 대공원가 한 주문이었다.

인생을 건 스토토사이트 대공원의 단 한 번의 골프 외교는 성공적이었다. 트럼프는 이날 트루스소셜에 우승컵을 든 그와 찍은 사진을 올리고 “훌륭한 골퍼”라 썼다. 또한 이날 스토토사이트 대공원가 경기 중 휘둘렀던 20년된 골프채를 대신할 새 골프채 세트를 선물했다. 이날부터 트럼프는 푸틴에 대한 태도도 수정했다.

트럼프는 골프 회동 몇 시간 뒤 NBC 방송 인터뷰에서 푸틴이 젤렌스키의 정당성을 문제 삼으며 과도정부 수립을 요구하고 나선 것에 대해 “매우 화나고 열받는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공개적으로 푸틴을 비난한 첫 사례다.

당시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는 4월 30일자로 “트럼프 대통령이 스토토사이트 대공원 대통령을 만난 직후 러시아를 비난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신문은 트럼프가 스토토사이트 대공원와 러시아에 대한 관점을 공유하고 있으며, ‘푸틴이 끝까지 미국을 상대로 고양이와 쥐 게임을 하며 미국을 농락하고 있기에 힘과 제재로 압박해야 한다’는 스토토사이트 대공원의 주장을 거의 그대로 옮기고 있다고 전했다.

이후에도 트럼프와 스토토사이트 대공원는 거의 매일 골프와 정치 등을 주제로 통화하거나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는 푸틴에게 전화하기 전 그에게 조언을 구했고, 우크라이나와 유럽 국가들은 트럼프와 소통하기 위해 그에게 연락했다. 또 지난달 젤렌스키는 스토토사이트 대공원에게 “이 중차대한 시기에 미국 대통령과 연결시켜줘 고맙다”고 말했다. 어느새 스토토사이트 대공원는 유럽 정상들과 트럼프를 잇는 비공식 가교가 된 것이다.

이제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미세한 심경 변화까지 읽는다. 지난 23일 핀란드 공영방송 윌레(Yle) TV1과 인터뷰에선 러시아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다”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미국의 대러 제재 또는 관세 부과 등의 후속 조처가 뒤따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알렉산드르 스토토사이트 대공원는 1968년 4월 1일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서 스웨덴계 핀란드인 아버지(괴란 스토토사이트 대공원)와 핀란드인 어머니(크리스텔 스토토사이트 대공원)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핀란드 아이스하키협회 회장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 아이스하키 선수로 활약했고, 12살부터는 골프를 시작했다.

북미프로아이스하키리그(NHL)의 유럽 스카우트 담당자이기도 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1986년 미 플로리다주 데이토나비치에서 메인랜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핀란드로 돌아가 헬싱키 남동쪽 10㎞ 지점의 산타하미나 섬에서 군복무를 마쳤고, 미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소재 퍼먼대에 골프 장학생으로 입학한 뒤 핀란드 골프 국가대표 선수로 활동했다.

대학 졸업 후 프로 골퍼의 길을 갈 계획이었으나, 재학 중인 1990년 22세의 나이에 골프를 포기하고 정치학을 전공해 인생의 물줄기가 바뀌었다. 1993년 대학을 졸업하고 이듬해 프랑스 파리 소르본대에서 불어를 배웠다. 이 때 다진 어학실력으로 현재 그는 스웨덴어와 핀란드는 물론, 불어·독어·영어 등 5개 국어에 능통한 다중 언어 구사자가 됐다.

1995년 벨기에 브뤼헤 소재 유럽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어 영국 런던정경대(LSE) 박사과정에 진학해 윌리엄 월리스 교수의 지도 하에 1999년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월리스 교수는 “런던정경대는 최근 우수한 핀란드 학생들을 배출하고 있다”며 “그 중에서도 알렉스는 가장 뛰어난 학생 중 하나”라고 평했다. 또한 그는 최근까지도 마라톤과 철인 3종 경기 등 극한의 체력을 요하는 종목에 참가해 완주하는 등 탁월한 스포츠 능력을 자랑하는 팔방 미인이기도 하다.

1999년부터 2001년 벨기에 브뤼셀 소재 EU 핀란드 대표부에서 연구원으로 일했으며, 2000년에는 유럽대학원에서 강사로 강의를 맡았다. 이 때 만난 영국인 변호사 수잔 이네스와 결혼해 2001년 첫째 아들 올리버 스토토사이트 대공원, 2006년 둘째 딸 에밀리 스토토사이트 대공원를 낳았다. 아내는 훗날 스토토사이트 대공원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핀란드 역사상 외국인 출신 첫 영부인으로 기록됐다.

2004년에는 유럽의회 의원 선거에 국민연합당 소속으로 출마해 당선, 정치인으로서 커리어 기반을 닦았다. 2008~2011년엔 핀란드 외무부 장관에 올랐다.

2011년 4월 실시된 핀란드 의회 선거에서는 소속된 국민연합당이 원내 제1당에 등극, 연정을 구성해 집권하면서 핀란드 대외무역유럽부 장관을 역임했고, 2014년에는 총리에 올랐다. 이어 재무장관 등을 역임한 뒤 2024년 핀란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1위로 결선에 진출, 결선 투표에서 과반인 51.62%(157만5444표)를 획득, 당선됐다. 1944년 제6대 대통령에 오른 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헤임에 이어 78년 만에 스웨덴계 핀란드인이 핀란드 대통령에 당선되는 순간이었다.

스토토사이트 대공원는 트럼프와 첫 골프 회동을 마친 다음날(2025년 3월 31일) 모교인 런던정경대를 방문,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에 나섰다. 세계 최고의 권력자와 골프를 함께하며 얻은 교훈은 세계적인 명문대 후배들 또한 관심을 가질 만한 대단한 경험이었다.

먼저 그는 대학 시절인 1990년 22살의 나이로 프로골프 선수가 되기를 포기했을 때, 자신에게 어떤 미래가 펼쳐질 지 전혀 알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아버지는 “너의 골프 실력이 네 인생에서 언젠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땐 흘려들었다. 아들이 트럼프와 골프 회동을 가졌다는 뉴스를 본 아버지는 문자를 보냈다. “옛날에 내가 그럴 거라고 말했잖아.”

그는 학생들에게 “외교엔 공적 외교와 사적 외교가 있는데, 나는 사적 외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골프나 자전거 타기와 같이 외교 협상장 밖의 활동 역시 모두 매우 유용하다”고 했다. 또한 “작은 나라 출신인 내가 미국 대통령과 7시간을 함께 보내는 건 회의실 안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스토토사이트 대공원는 “핀란드인들은 속마음을 숨기지 않고 솔직한 편”이라며 자신의 역할을 자국인의 천성에 빗댔다. 하지만, 과감한 승부사 정신과 솔직담백한 성격 등 그가 가진 운동 선수 특유의 캐릭터 또한 그의 역할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스토토사이트 대공원의 영향력은 다행히도 트럼프와의 첫 만남 이후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트럼프는 이달 15일로 예정된 푸틴과의 회담을 이틀 앞두고 유럽 주요국 정상들과의 영상 회의에 참석한 뒤, 푸틴에 대한 입장을 가다듬었다. 트럼프는 애초 러시아군이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 대부분을 러시아에 넘겨주고 그 중 일부만 우크라이나가 돌려받는 ‘영토 교환’을 중재안으로 여기고 있었다.

영상 회의 후 여러 조언을 받아들여 마음을 돌린 트럼프는 ‘영토 교환’ 얘기는 꺼내지 않고, 러시아가 즉각 휴전에 동의하도록 압박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두기로 했다.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영상 회의 후 입장을 바꾼 배경에 스토토사이트 대공원 핀란드 대통령이 있다고 지난 13일 보도했다.

‘의지의 연합’이란 영국과 프랑스가 주도하는 자발적 우크라이나 지원 국제 연합체다. 지난 3월 한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종전 협상이 무르익자, 키어 스타마 영국 총리 주도로 유럽 25개국과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정상 및 EU 집행위원장, 나토 사무총장 등 30명이 참여하는 연합체로 확대됐다.

스토토사이트 대공원 대통령은 쟁쟁한 정상들 사이에서 조용히 묻어가려 하지도 않았다. AFP 통신에 따르면 스토토사이트 대공원 대통령은 백악관 회담에 참석한 직후 취재진에게 “(우크라이나를 위한) 안보 보장과 향후 조치에 대해 합의했다”며 1주일 안에 안보 보장 세부 내용이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의지의 연합’을 기반으로 안보 보장안을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