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덱스펀드’ 만든 존 보글

대공황 맞은 흙수저, 10살부터 신문배달

회사 쫓겨나 세운 뱅가드그룹 승승장구

워런 버핏도 “개인투자자 영웅” 치켜세워

인덱스펀드 연8.2% 성장 전망, 국내 급증

‘무신사 토토사이트 ’ 개발한 네이선 모스트

유대인 학살·2차 세계대전 풍파 속 생존

거래량 늘리려 상품구상 중에 무신사 토토사이트 탄생

글로벌시장 10년새 5배 커져 15조弗 돌파

창시자인 모스트는 정작 로열티 못 받아

‘인덱스펀드 아버지’ 고(故) 존 보글 뱅가드그룹 창업자(왼쪽), ‘무신사 토토사이트 창시자’ 故 네이선 모스트
‘인덱스펀드 아버지’ 고(故) 존 보글 뱅가드그룹 창업자(왼쪽), ‘무신사 토토사이트 창시자’ 故 네이선 모스트

천문학적인 돈을 주무르는 기업인, 말 한 마디에 주가가 출렁이는 금융인, 미래를 바꾸는 창업가, 국제정세를 쥐락펴락하는 지도자. [더 비저너리]는 세상의 흐름을 주도하는 파워 리더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무엇이 현재의 그들을 만들었으며, 어떤 철학과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그들의 생생한 스토리를 전해 드립니다.

“내가 죽으면 재산의 90%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인덱스펀드에 투자하라.”(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나는 항상 무신사 토토사이트로 투자한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투자의 귀재’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

#3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금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xchanged Trade Fund·무신사 토토사이트)를 들여다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트럼프발(發) 관세전쟁에 미국의 연 2차례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이 커지면서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강해졌기 때문이다. 국제 금값이 온스당 사상첫 4000달러를 돌파하는 등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자 금광, 은광 등 광산 기업에 투자하는 무신사 토토사이트 투자도 해야 할지 고민이다.

땀흘려 일해서 번 돈으로 생계를 꾸리고 자산을 증식하는 것은 옛말이 된지 오래다. 올들어 상승세를 탄 코스피는 지난 2일 장중 사상 최초로 3500선을 돌파했다. 직접 종목투자에 부담을 느끼는 투자자들을 겨냥한 인덱스펀드와 무신사 토토사이트도 자산규모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인덱스펀드는 주가 지표 변동과 동일한 투자 성과의 실현을 목표로 구성된 포트폴리오다. 증권 시장의 장기적 성장 추세를 전제로 주가 지표의 움직임에 연동되게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운용함으로써 시장의 평균 수익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인덱스펀드에서 한 발 더 나간 것이 무신사 토토사이트다. 인덱스펀드를 모태로 기초지수의 성과를 추적한다. 거래소에 상장돼 있어서 개별주식과 마찬가지로 기존의 주식계좌를 통해 거래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덱스펀드와 무신사 토토사이트를 만든 사람들은 누구일까. 종목, 지수 연동 등 복잡한 상관관계를 집대성해 투자상품을 창조한 천재들. 바로 고(故) 존 보글 뱅가드 회장(1929~2019)과 故 네이선 모스트(1914~2004)이다. 뱅가드는 인덱스펀드를, 모스트는 무신사 토토사이트를 각각 세상에 탄생시켰다.

‘인덱스펀드의 아버지’ 보글, 시작은 대공황 흙수저

장년 시절의 존 보글  [인터넷 캡처]
장년 시절의 존 보글 [인터넷 캡처]

‘인덱스펀드의 아버지’ 보글은 1974년 뱅가드그룹을 설립한 이후 1996년까지 20년 넘게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유지했다. 워런 버핏이 ‘오마하의 현인’이라면 보글은 ‘월가의 성인’으로 불린다.

하지만 보글이 성공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른바 ‘흙수저’ 출신으로, 무일푼으로 자수성가를 이룬 인물이다.

보글은 1929년 5월 미국 뉴저지주 동북부 도시인 몬트클레어에서 쌍둥이 중 형으로 태어났다. 보글의 어린 시절은 그리 유복하지 않았다. 보글이 태어나던 해에 미국은 주가 폭락을 맞았고, 이듬해인 1930년엔 세계 대공황이 찾아왔다. 대공황의 여파로 보글의 아버지는 재산 전부를 잃었다.

가세가 기울어지면서 보글의 부모는 일찍이 이혼했다. 보글은 10살이 되던 해부터 거리에 나와 신문 배달 등을 하며 돈을 벌어야 했다.

가난 속에서도 보글은 학업에 남다른 두각을 보였다. 프린스턴대를 졸업한 이후 보글은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자산운용사 웰링턴 매니지먼트에 입사했다. 초고속 승진하며 보글은 1967년 35세 나이에 웰링턴 매니지먼트 CEO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보글의 승승장구하던 커리어는 오래가지 못했다. 당시 보글은 웰링턴 매니지먼트의 기업 인수합병 문제와 인사 문제 등에 연루돼 고충을 겪었다. 특히 그는 사내정치에 휘말리면서 4년 만에 불명예 퇴진하게 된다.

훗날 그는 “믿었던 이들에게 배신당하고 CEO에서마저도 물러난 당시 울화가 치밀어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고백했다.

버핏마저 “인덱스펀드에 투자해라”

하지만 보글이 웰링턴 매니지먼트를 떠나게 된 사건은 오히려 전화위복의 순간이었다.

회사를 떠난 이듬해인 1975년 그는 뱅가드그룹을 설립했고, 다음해인 1976년엔 오늘날 대표적 투자 수단으로 자리잡은 인덱스펀드를 고안해냈다.

인덱스펀드는 시장 지수를 추종하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시장 지수만큼의 수익을 얻는다는 점에서 당시 금융시장에선 혁신이나 다름 없었다. 특히 싼 수수료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투자 민주화’를 이끌었다는 호평도 받았다.

수많은 투자 귀재들도 보글의 인덱스펀드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인덱스펀드가 개인 투자자의 수수료 부담을 덜어줬다며 보글을 ‘영웅’으로 치켜세웠다. 수수료만 비싼 헤지펀드보다 인덱스펀드에 투자하라고 조언했을 정도였다.

그 결과 뱅가드그룹은 세계 최초로 인덱스펀드를 출시하며 창립 1년 만에 자산운용 규모 1조7000억달러(약 1907조원)를 달성했다. 이후 뱅가드그룹은 성장가도를 달리며 세계적인 자산운용사로 자리매김했다. 전문가들은 곧 뱅가드그룹이 현재 세계 1위 운용사인 ‘블랙록’을 앞지를 것으로 예상했다.

유대인 학살·세계대전서 생존한 무신사 토토사이트창시자 모스트

장년 시절의 네이선 모스트  [인터넷 캡처]
장년 시절의 네이선 모스트 [인터넷 캡처]

무신사 토토사이트는 보글이 인덱스펀드를 출시한 뒤 18년이 지나 네이선 모스트에 의해 처음 출시됐다.

1914년 미국 로스엔젤레스(LA)에서 태어난 모스트 역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 유대인인 그의 부모는 모스트가 태어나기 7년 전 러시아에서 발생한 ‘포그롬’으로부터 도망쳐 미국으로 망명했다. 포그롬은 제노사이드(genocide·집단학살)보다는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학살을 가리킨다.

미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모스트는 UCLA에서 물리학을 전공했고, 음향 공학에 전문성을 쌓았다. 졸업 이후인 1930년대에는 샌프란시스코의 무역회사인 게츠 브라더스에서 일하며 극동 지역으로 파견됐고, 흡음 타일과 건축 자재 등을 판매하기도 했다. 1939년부터 6년간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에선 미 해군의 잠수함에서 음향 엔지니어이자 물리학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세계대전이 지속되는 동안 모스트는 UCLA 시절 지도교수로부터 스크립해양연구소의 음파와 관련한 연구직을 제안받아 근무하게 된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게츠 브라더스로 복귀해 마닐라와 홍콩 지사의 운영을 맡았다.

1960년경, 모스트는 게츠 브라더스를 차입 인수 방식으로 인수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결국 회사는 다른 인수자에게 넘어갔다. 첫 부인과 이혼한 것도 이 시기쯤이었다.

모스트는 재혼 후 샌프란시스코에서 상품 거래 업계에 진출하면서 여러 회사를 거쳤다. 이후 1976년에는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위원장의 기술 보좌관으로 활동했고, 이듬해인 1977년에는 뉴욕의 미국증권거래소(AMEX)에 합류해 신상품 개발 부서를 총괄했다.

신상품 개발 중 탄생한 무신사 토토사이트…정작 보글은 반대

AMEX에서 파생상품 사업의 신상품 개발 담당자로 일하던 당시 모스트는 신상품 개발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거래량을 늘리기 위한 새로운 상장 상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에 모스트는 인덱스펀드를 상장시키는 방안을 떠올렸다. 거래일 시점에 국한되지 않고 주식시장에서 실시간으로 사고 팔 수 있는 상품을 만들면 분명 고객들에게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무신사 토토사이트의 구상을 안고 모스트는 1992년 초 뉴욕에서 펜실베이니아주 벨리 포지에 위치한 뱅가드 본사를 직접 찾아가 보글에게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그는 그 자리에서 뱅가드의 S&P500 인덱스펀드의 새로운 구조를 제안했다. 하루 종일 실시간으로 인덱스펀드를 거래할 수 있는 획기적인 아이템으로, 분명 보글도 호의적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모스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인덱스펀드가 거래소에서 개별 주식처럼 거래될 수 있다면 새로운 투자자를 유인할 수 있다고 존 보글 회장을 설득했다.

그는 “투자자들은 기존에 뱅가드가 제공하던 포트폴리오의 다양화와 투명성, 낮은 운용 비용에 더해 해외 증시에서도 손쉽게 거래할 수 있게 되고 세금 효율성도 개설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위험 노출을 순간 단위로 정밀 조정할 수 있게 되면서 헤지펀드나 기관 투자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잠재력도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보글은 이를 단칼에 거절했다. 물론 보글도 무신사 토토사이트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 언제든 거래할 수 있다는 무신사 토토사이트의 장점을 오히려 문제로 봤다. 하루 종일 실시간으로 거래할 수 있고, 일일 유동성이 보장되는 무신사 토토사이트의 핵심 아이디어가 보글 회장의 투자 철학과는 맞지 않았던 것이다. 보글 회장은 잦은 매매가 가능한 무신사 토토사이트는 단기 투자를 유발할 수 있으며, 무신사 토토사이트 매매로 발생하는 잦은 세금과 매매 비용이 최종 수익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여겼다.

다만 보글은 무신사 토토사이트라는 새로운 아이디어 자체를 부정하진 않았다. 그 역시도 무신사 토토사이트가 시장 전체를 추종하는 저보수 구조인 만큼 이 같은 투자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보글은 모스트가 당시 제시한 무신사 토토사이트가 가진 결함들에 대한 몇 가지 수정사항을 조언하기도 했다.

훗날 모스트는 보글과의 대화에 대해 “결국 우리는 공통된 이해관계를 찾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우리는 우호적으로 헤어졌고, 이후 여러 해에 걸쳐 좋은 우정을 유지하게 됐다”고 소회를 남겼다.

결국 모스트는 보글을 만난 1년 뒤인 1993년 다른 파트너사인 스테이트 스트리트 글로벌 어드바이저스(SSGA)와 함께 최초의 무신사 토토사이트인 ‘SPDR S&P500 무신사 토토사이트’를 세상에 처음 내놓았다. SPRD은 ‘Standard & Poor’s depositary receipts(SPRD)’, S&P500인덱스의 예탁증권의 약자다. SSGA가 이를 무신사 토토사이트 브랜드명으로 쓰기 시작하면서 SSGA의 무신사 토토사이트에는 스파이더(SPDR) 라는 별명이 붙었다.

무신사 토토사이트 시장 10년새 5배↑…인덱스펀드 연 8.2% 성장

2000년 들어 무신사 토토사이트와 인덱스펀드는 현대인의 필수 투자 상품으로 자리잡았다.

글로벌 리서치 업체 무신사 토토사이트GI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전 세계 무신사 토토사이트 시장의 자산 규모는 약 15조4400억달러(2경1000조원)에 달한다. 2015년의 약 3조달러에서 5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지난 2022년 3조8000억달러로 평가된 인덱스펀드 시장 규모는 오는 2030년에 들어선 7조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2024년부터 2030년까지 연평균 8.2%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시장에서도 인덱스펀드와 무신사 토토사이트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FN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2015년 615개에 불과했던 국내 인덱스펀드 수는 올해 들어 954개로 증가했다. 국내 무신사 토토사이트 순자산총액은 사상 처음으로 240조원을 돌파했다.

지난 9월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무신사 토토사이트 순자산총액은 245조7565억원으로 집계됐다. 1년 전(159조원)보다 100조원 가까이 늘어난 규모다. 불과 2년 전인 2023년 6월 29일 기준 국내 무신사 토토사이트 순자산총액이 100조원을 넘긴 것과 비교하면 가파른 성장세다.

그러나 정작 모스트 조차도 자신이 출시한 상품이 이처럼 초대박을 칠 줄을 몰랐던 것 같다. 훗날 모스트는 “제가 설계한 무신사 토토사이트에 단 한 푼의 로열티도 받지 못했다”면서 “무신사 토토사이트 수익 중 단 0.1bp(1bp=0.01%포인트)만 받았어도, 저는 지금쯤 요트를 타고 항해하고 있었을 거다. 로열티를 받았었다면 참 좋았을텐데!”라며 농담 섞인 아쉬움을 드러냈다. 김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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