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덱스토토사이트 토실장 설계’ 존 보글
‘ETF 출시’ 네이선 모스트
천문학적인 돈을 주무르는 기업인, 말 한 마디에 주가가 출렁이는 금융인, 미래를 바꾸는 창업가, 국제정세를 쥐락펴락하는 지도자. [더 비저너리]는 세상의 흐름을 주도하는 파워 리더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무엇이 현재의 그들을 만들었으며, 어떤 철학과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그들의 생생한 스토리를 전해 드립니다.
![고(故) 존 보글 뱅가드그룹 창업자(왼쪽)과 ETF 창시자 네이트 모스트. [게티이미지]](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6/24/news-p.v1.20250612.51b79131907f4c44b35ae2b8dc029eeb_P1.jpg)
내가 죽으면 재산의 90%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인덱스토토사이트 토실장에 투자하라.
나는 항상 ETF로 투자한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3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금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토토사이트 토실장(Exchanged Trade Fund·ETF)를 들여다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트럼프발(發) 관세전쟁으로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강해진데다 지난 13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이 이란을 기습공습하자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겹쳐 금값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금에 투자하는 ETF들의 수익률이 고공행진하자 금을 추종하는 ETF 상품 투자를 이제라도 해야 할지 고민이다.
근로소득만으로 생계를 꾸리고 자산을 증식하는 게 옛말이 된지 오래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버는 것 이외로 자산을 모으는 수단이 현대인들에게 필수가 된 시대다. 이 가운데 인덱스토토사이트 토실장와 ETF가 각광받고 있다. 직접적인 종목 투자를 하는 방식보다 안전해 너도나도 인덱스 토토사이트 토실장와 ETF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인덱스토토사이트 토실장는 주가 지표의 변동과 동일한 투자 성과의 실현을 목표로 구성된 포트폴리오다. 증권 시장의 장기적 성장 추세를 전제로 주가 지표의 움직임에 연동되게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운용함으로써 시장의 평균 수익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토토사이트 토실장 운용사가 투자종목을 직접 고르는 주식형토토사이트 토실장와 다르게 토토사이트 토실장의 수익률이 지수의 변동률과 비슷하도록 주가지수를 따라가도록 종목을 구성하고 운용하는 것이다. 인덱스 토토사이트 토실장는 보통 하루에 한 번만 가격이 결정되며, 매매를 원할 때는 이전 거래일의 가격으로 거래된다.
여기서 한 발 나아간 ETF는 인덱스토토사이트 토실장를 모태로 하고 있다. 기초지수의 성과를 추적하는 것이 목표인 인덱스토토사이트 토실장로, 거래소에 상장돼 있어서 개별주식과 마찬가지로 기존의 주식계좌를 통해 거래를 할 수 있다.
특히 ETF는 구성종목과 수량 등 자산구성내역(PDF)이 투명하게 공개돼 있고, 장중에는 실시간으로 순자산가치(NAV)가 제공돼 거래에 참고할 수 있다. 최소한의 금액만으로 분산투자 효과를 누릴 수 있고 토토사이트 토실장보다 운용보수가 낮고 주식에 적용되는 거래세도 붙지 않아 효과적인 투자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렇다면 인덱스 토토사이트 토실장와 ETF를 만든 천재들은 누굴까. 인덱스 토토사이트 토실장를 처음 세상에 알린 주인공은 고(故) 존 보글 뱅가드 회장(1929~2019), ETF를 처음 세상에 선보인 주인공은 故 네이선 모스트(1914~2004)로 알려져 있다.
‘인덱스토토사이트 토실장의 아버지’ 보글…대공황으로 하루아침에 흙수저·10살부터 신문배달하며 자수성가
![젊은 시절의 존 보글. [인터넷 캡처]](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6/24/news-p.v1.20250612.b3efaa4e7d6a4bf0a8aefe357a5ef4c9_P1.jpg)
‘인덱스토토사이트 토실장의 아버지’ 보글은 1974년 뱅가드그룹을 설립한 이후 1996년까지 20년 넘게 직접 경영하며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있었다. 워런 버핏이 ‘오마하의 현인’이라면 보글은 ‘월가의 성인’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보글이 성공하기까지의 인생에는 늘 탄탄대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역시 찢어지게 가난했던 ‘흙수저’ 출신으로, 무일푼으로 자수성가를 이룬 인물이다.
보글은 지난 1929년 5월 미국 뉴저지주 동북부 도시인 몬트클레어에서 쌍둥이 중 형으로 태어났다.
보글의 어린 시절은 그리 유복하지 않았다. 보글이 태어나던 해에 미국은 주가 폭락을 맞았고, 이듬해인 1930년엔 세계 대공황이 찾아왔다. 대공황의 여파로 보글의 아버지는 재산 전부를 잃었다.
가세가 기울어지면서 보글의 부모님은 일찍이 이혼했다. 보글은 불과 10살이 되던 해부터 거리에 나와 신문 배달 등을 하며 돈을 벌어야만 했다.
하지만 가난 속에서도 보글은 학업에 남다른 두각을 보였다. 보글은 자신이 진학한 고등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우수한 학생이었다. 1951년엔 프린스턴대 경제학과를 졸업했으며 초기 뮤추얼토토사이트 토실장에 관한 논문을 쓰기도 했다.
프린스턴대를 졸업한 이후 보글은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자산운용사 웰링턴 매니지먼트에 입사했다. 이 회사에서 마케팅을 담당한 보글은 관리자로서도 빠르게 성장했으며, 회사 설립자인 월터 모건의 신임을 얻기 시작했다. 초고속 승진 끝에 보글은 1967년 웰링턴 매니지먼트 사장 겸 CEO 자리에 올랐다.
초고속 승진 끝에 최고경영자까지 올라섰음에도 보글의 장밋빛 커리어는 오래가지 못했다. 당시 보글은 웰링턴 매니지먼트의 기업 인수합병 문제와 인사 문제 등에 연루돼 고충을 겪었다. 특히 그는 사내정치에 휘말리면서 4년 만에 직에서 불명예 퇴진하게 된다.
35세에 웰링턴 자산운용의 CEO가 된 보글은 4인 공동창업자로 이뤄진 신생 자산운용사와 합병을 추진했다. 그런데 이게 패착이었다. 50개 종목이 거품을 주도했던 니프티피프티가 폭락 사태로 이어지면서 웰링턴 자산운용도 큰 손실을 봤다.
이 과정에서 보글이 믿었던 4인의 공동창업자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손실을 보글의 탓으로 돌렸다. 그가 웰링턴 자산운용의 CEO라는 이유에서였다. 훗날 그는 “믿었던 이들에게 배신당하고 CEO에서 마저도 물러난 당시 울화가 치밀어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고백했다.
최초의 인덱스토토사이트 토실장…버핏마저 “인덱스토토사이트 토실장에 투자해라” 극찬
![지난 2008년 5월 뱅가드 그룹 창립자인 존 보글이 미국 뉴욕에서 AP통신과 인터뷰를 하는 모습. [AP]](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6/24/news-p.v1.20250612.86f00f4517ac44e3b58d8654dcd73b58_P1.jpg)
하지만 보글이 웰링턴 매니지먼트를 떠나게 된 사건은 앞으로 그에게 다가올 미래를 감안했을 때 오히려 전화위복의 순간이었다.
회사를 떠난 이듬해인 1975년 그는 뱅가드그룹을 설립했고, 다음해인 1976년엔 오늘날 대표적 투자 수단으로 자리잡은 인덱스 토토사이트 토실장를 고안해내는 결과로도 이어졌다.
인덱스 토토사이트 토실장는 시장 지수를 추종하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시장 지수만큼의 수익을 얻는다는 점에서 당시 금융시장에선 혁신이나 다름 없었다. 특히 싼 수수료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투자 민주화’를 이끌었다는 호평도 받았다.
인덱스 토토사이트 토실장는 최고의 투자 전략이다
수많은 투자의 귀재들도 보글의 인덱스 토토사이트 토실장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버핏은 인덱스 토토사이트 토실장가 개인 투자자의 수수료 부담을 덜어줬다며 보글을 ‘영웅’으로 치켜세웠다. 수수료만 비싼 헤지토토사이트 토실장(다양한 투자전략을 사용해 수익률을 높이려는 토토사이트 토실장)보다 인덱스 토토사이트 토실장에 투자하라고 조언했을 정도였다.
그 결과 뱅가드그룹은 1975년 세계 최초로 인덱스 토토사이트 토실장를 출시하며 창립 1년 만에 자산운용 규모 1조7000억달러(약 1907조원)를 달성했다. 이후 뱅가드그룹은 연일 성장해 세계적인 자산운용사로 자리매김했다. 전문가들은 곧 뱅가드그룹이 현재 세계 1위 운용사인 ‘블랙록’을 앞지를 것으로 예상된다.
인덱스토토사이트 토실장 18년 후 ETF 탄생시킨 모스트...유대인 학살·세계대전 풍파에 살아남아
![ETF의 창시자 네이트 모스트. [인터넷 캡처]](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6/24/news-p.v1.20250612.a156146bd9f54e8bbada3c9768a16a92_P1.jpg)
ETF는 보글이 인덱스토토사이트 토실장를 출시한 뒤 18년이 지나 네이트 모스트에 의해 처음 출시됐다.
1914년 미국 로스엔젤레스(LA)에서 태어난 모스트 역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 유대인인 그의 부모는 모스트가 태어나기 7년 전 러시아에서 발생한 ‘포그롬’으로부터 도망쳐 미국으로 망명했다. 포그롬은 제노사이드(genocide·집단학살)보다는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학살을 가리킨다.
미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모스트는 UCLA에서 물리학을 전공했고, 음향 공학에 전문성을 쌓았다. 졸업 이후인 1930년대에는 샌프란시스코의 무역회사인 게츠 브라더스에서 일하며 극동 지역으로 파견되었고, 흡음 타일과 건축 자재 등을 판매하기도 했다. 1939년부터 6년간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에선 미 해군의 잠수함에서 음향 엔지니어이자 물리학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전쟁 여파로 모스트는 목숨을 위협받는 일생일대의 위기를 겪기도 했다. 1941년 11월 말, 모스트는 미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중국 상하이에서 마지막 배를 탔다. 자신이 다니던 회사의 파트너 중 한 명의 딸인 메이 로즈 라자루스와 결혼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모스트가 상하이를 떠난 뒤 일본군이 쳐들어오면서 그와 함께 일하던 지점장은 홍콩에서 일본군에 의해 수용소로 보내져 숨을 거두고 말았다.
모스트의 회사 동료이자 전 처남인 폴 라자루스 “모스트의 당시 귀국이 그의 생명을 구한 셈이었다”고 말했다.
세계대전이 지속되는 동안 모스트는 UCLA 시절 지도교수로부터 스크립해양연구소의 음파와 관련한 연구직을 제안받아 근무하게 된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게츠 브라더스로 복귀해 마닐라와 홍콩 지사의 운영을 맡았다.
1960년경, 모스트는 게츠 브라더스를 차입 인수 방식으로 인수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결국 회사는 다른 인수자에게 넘어갔다. 첫 부인과 이혼한 것도 이 시기쯤이었다.
모스트는 재혼 후 샌프란시스코에서 상품 거래 업계에 진출하면서 여러 회사를 거쳤다. 이후 1976년에는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위원장의 기술 보좌관으로 활동했고, 이듬해인 1977년에는 뉴욕의 미국증권거래소(AMEX)에 합류해 신상품 개발 부서를 총괄했다.
신상품 개발 중 탄생한 ETF…정작 보글은 ‘반대’
![존 보글(오른쪽) 뱅가드 창립자와 네이트 모스트. [챗GPT로 가공한 이미지]](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6/24/news-p.v1.20250624.d6859ee2af044b0e9d966c929e2fe74a_P1.jpg)
AMEX에서 파생상품 사업의 신상품 개발 담당자로 일하던 당시 모스트는 신상품 개발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거래량을 늘리기 위한 새로운 상장 상품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인덱스토토사이트 토실장를 상장시키면 어떨까? 거래일 시점에 국한되지 않고 주식시장에서 실시간으로 사고 팔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보면 좋을 것 같은데.
ETF의 구상을 안고 모스트는 1992년 초 뉴욕에서 펜실베이니아주 벨리 포지에 위치한 뱅가드 본사를 직접 찾아가 보글에게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그는 그 자리에서 뱅가드의 S&P500 인덱스토토사이트 토실장의 새로운 구조를 제안했다. 하루 종일 실시간으로 인덱스토토사이트 토실장를 거래할 수 있는 획기적인 아이템으로, 분명 보글로부터 호의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당신이 만든 S&P500 인덱스 토토사이트 토실장를 ETF 형태로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ETF를 개별주식처럼 거래할 수 있게 되면 새로운 투자자들이 유입될 것입니다.
모스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인덱스 토토사이트 토실장가 거래소에서 개별 주식처럼 거래될 수 있다면 새로운 투자자를 유인할 수 있다고 존 보글 회장을 설득했다.
생각해보세요. 투자자들은 기존에 뱅가드가 제공하던 포트폴리오의 다양화와 투명성, 낮은 운용 비용에 더해 해외 증시에서도 손쉽게 거래할 수 있게 되고 세금 효율성도 개설할 수 있게 됩니다. 위험 노출을 순간 단위로 정밀 조정할 수 있게 되면서 헤지토토사이트 토실장나 기관 투자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잠재력도 생기는 거죠.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보글은 이를 단칼에 거절했다.
전 반대입니다. 물론 ETF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언제든 거래할 수 있다는 ETF의 장점이 문제입니다.
하루 종일 실시간으로 거래할 수 있고, 일일 유동성이 보장되는 ETF의 핵심 아이디어가 존 보글 회장의 투자 철학과는 맞지 않았다. 잦은 매매가 가능한 ETF는 단기 투자를 유발한다고 봤다. 그리고 ETF 매매로 발생하는 잦은 세금과 매매 비용이 최종 수익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봤다.
우리 ‘인덱스 500 토토사이트 토실장’는 장기 투자자를 위한 상품이기 때문에 ETF와 같은 추가 유동성을 도입하면 대부분 단기 투기자들을 끌어들일 것이고, 이들은 장기 투자자들의 이익과 충돌할 것입니다.
다만 보글은 ETF라는 새로운 아이디어 자체를 부정하진 않았다. 그 역시도 ETF가 시장 전체를 추종하는 저보수 구조인 만큼 이 같은 투자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보글은 모스트가 당시 제시한 ETF가 가진 결함들에 대한 몇 가지 수정사항을 조언하기도 했다.
결국 우리는 공통된 이해관계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우호적으로 헤어졌고, 이후 여러 해에 걸쳐 좋은 우정을 유지하게 됐다.
결국 모스트는 보글을 만난 1년 뒤인 1993년 다른 파트너사인 스테이트 스트리트 글로벌 어드바이저스(SSGA)와 함께 최초의 ETF인 SPDR S&P500 ETF를 세상에 처음 내놓았다.
SPRD은 ‘Standard & Poor’s depositary receipts(SPRD)’, S&P500인덱스의 예탁증권의 약자다. SSGA가 이를 ETF 브랜드명으로 쓰기 시작하면서 SSGA의 ETF에는 스파이더(SPDR) 라는 별명이 붙었다.
10년새 5배 불어난 ETF 시장…인덱스 토토사이트 토실장는 연평균 8.2% 성장률
![국내 상장지수토토사이트 토실장(ETF) 시장 순자산 규모 추이. [헤럴드경제DB]](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6/24/news-p.v1.20250617.5fa9d59de4074a2e9dd7d08004682a5d_P1.jpg)
21세기 ETF와 인덱스토토사이트 토실장는 현대인의 필수 투자 상품으로 자리잡았다. 보글과 모스트가 인덱스토토사이트 토실장와 ETF를 각각 세상에 처음 선보인 이후 두 투자상품의 규모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글로벌 리서치 업체 ETFGI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전 세계 ETF 시장의 자산 규모는 약 15조4400억달러에 달한다. 이는 한화로 무려 2경1000조원에 달하는 규모이며, 2015년의 약 3조달러에서 5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지난 2022년 3조8000억달러로 평가된 인덱스 토토사이트 토실장 시장 규모는 오는 2030년에 들어선 7조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으며 2024년부터 2030년까지 연평균 8.2%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시장에서도 인덱스 토토사이트 토실장와 ETF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FN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2015년 615개에 불과했던 국내 인덱스 토토사이트 토실장 수는 올해 들어 954개로 증가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기준 국내 ETF 순자산총액은 195조6711억원으로 집계됐다. 불과 2년 전인 2023년 6월 29일 기준 국내 ETF 순자산총액이 100조원을 넘긴 것을 고려하면 가파른 성장세다.
그러나 정작 모스트 조차도 자신이 출시한 상품이 이처럼 초대박을 칠 줄을 몰랐던 것 같다.
제가 설계한 ETF에 단 한 푼의 로열티도 받지 못했어요. ETF 수익 중 단 0.1bp(베이시스 포인트)만 받았어도, 저는 지금쯤 요트를 타고 항해하고 있었을 겁니다. 로열티를 받았었다면 참 좋았을텐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