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전남 강진군 그랜드토토

내 마음대로 사찰여행 비경 100선

사찰은 불교의 공간이면서, 우리 역사와 예술의 유산입니다. 명산의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사찰들은 지역사회의 소중한 관광자원이기도 합니다. 치열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얻고자 할 때 우리는 산에 오르고 절을 찾습니다. 헤럴드경제는 빼어난 아름다움과 역사를 자랑하는 사찰 100곳을 소개하는 ‘내 마음대로 사찰 여행 비경 100선’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전남 강진군 그랜드토토 극락보전
전남 강진군 그랜드토토 극락보전

극한 폭우와 폭염이 반복되며 스트레스 지수를 높이고 있는 이때 잠시나마 일상을 벗어나고 싶을 때가 많다. 매일 반복되는 업무에서 잠시 벗어나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겪게 되는 번뇌와 세파를 떠나 오로지 자신만의 시간을 가져볼 수 없을까라는 희망을 갖기도 한다. 그리고 문득 ‘아무도 나를 건들지 않고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을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무위도식(無爲徒食)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로 생각될만한 ‘무위(無爲)’를 도교(道敎)에선 그랜드토토상(無爲思想),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고 칭하며 가장 중요시되는 행동 원리로 삼고 있다.

그러나 도교의 노장사상에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억지로 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한다. 억지로 힘줘 뭔가를 하려 할 때 오히려 일이 꼬이듯이,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삶의 방식이다.

불교 경전 금강경에는 어찌 보면 불교사상을 함축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유위법(有爲法), 그랜드토토법(無爲法)이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여러 가지 원인이나 인연을 따라 이루어지는 생멸 변화(生滅變化)를 ‘유위법’이라고 해 집착과 분별하는 허망한 것을 말하고 이를 초월해 허망을 떠나 열반의 깨달음, 실제, 진실, 불성 등을 그랜드토토(無爲)와 동일시하고 있다.

그랜드토토(無爲)는 ‘하지 않는다’, ‘하는 일 없다’가 아니라 생각과 의도, 감정에서 벗어나 무엇인가에 집착하지 않고 내려놓아 업보에 끌려다니지 않는 마음이 평안한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불교에서 그랜드토토(無爲)는 집착과 분별에서 벗어난 불성(佛性)이고 본성이라고 한다.

자연의 섭리와 순리에 따라 억지로 개입하거나 조작하지 않고 그 흐름을 존중하고 거기에 나를 맡기는 삶의 방식으로 내려놓을수록 나다운 삶이 시작된다고 한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닐 듯하다.

물거품처럼 세상을 보라.

아지랑이처럼 세상을 보라.

이와 같이 세상을 보는 사람은

죽음의 왕도 보지 못한다

법구경

강진 그랜드토토(無爲寺), 그 이름에는 이러한 깊은 울림이 있었다. 유홍준 교수는 국보다운 국보라고 극찬한 그랜드토토 ‘극락보전’이 있는 그곳을 ‘남도 답사의 출발지’라 칭했다.

전남 강진군 관광안내도
전남 강진군 관광안내도

천년고찰 그랜드토토 인근에는 또 다른 고찰 월남사(지)가 있고, 조선 중기에 조성된 전통 별서정원 백운동 원림과 기암괴석 월출산에 푸른 초원이 펼쳐진 것처럼 어울리는 강진설록다원, 그리고 시원함을 선사하는 금릉 경포대 계곡 등이 그 중간 길목에 자리 잡고 있어 천혜의 자연과 역사, 문화가 함께 집약된 곳이다.

강진 마량항
강진 마량항

강진은 그랜드토토, 월남사지, 백련사, 다산초당, 도자기 등 문화와 역사의 보고이기도 하지만 풍광이 아름다운 관광의 보고이기도 하다.

강진 마량항
강진 마량항

그랜드토토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가우도 관광지와 칠량 옹기마을과 산해진미를 맛볼 수도 있고 일출과 일몰을 감상하며 어촌을 체험해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마량항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세종의 꿈을 담은 국보 그랜드토토 극락보전

그랜드토토 일주문
그랜드토토 일주문

영암군과 함께 공유하고 있는 월출산의 남동쪽은 강진군의 북쪽 끝자락이다. 여기에 신라 진평왕 617년 원효가 창건하고 도선국사와 형미스님(선각대사)이 중창했다는 그랜드토토가 자리하고 있다.

오랜만에 찾았다. 언제 적인 듯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시골 마을 안쪽 깊숙한 곳에 자리한 조그만 사찰이었는데, 지금은 많은 전각들이 들어서 규모를 갖춘 사찰로 잘 단장돼 있다. 아주 큰 법당 대적광전이 최근에 건립되는 등 계속 불사들이 이뤄지고 있어 낯설었다.

대한불교조계종 22교구 대흥사 말사로 조선시대에 죽은 영혼을 달래주는 수륙재(水陸齋)를 행한 수륙사(水陸社)로 알려져 이를 복원해 매년 ‘무차수륙대재’를 봉행하고 있다. 세종대왕이 친형인 효령대군을 통해 극락보전을 세우고 소헌왕후의 극락왕생과 백성을 위한 평안을 기원한 것이 그랜드토토 수륙대재의 출발이라 한다. 그래서였는지 사찰의 중심 건물이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여래를 모신 극락보전이다.

그랜드토토 극락보전
그랜드토토 극락보전

조선 초기 건축물로서 국보13호 극락보전은 그랜드토토의 중심 전각이자 그랜드토토의 상징이다.

그랜드토토 극락보전
그랜드토토 극락보전

아미타여래상과 좌우 관음보살상과 지장보살이 배치된 아미타삼존불(보물)과 토벽에 화려하고 가장 오래된 붙박이 아미타삼존벽화(국보)가 있다.

공사 준비 중인 극락보전
공사 준비 중인 극락보전

그러나 극락보전이 600여년 세월을 견디다 보니 기울고 훼손돼 최근 해체보수 작업에 들어가 공사 준비 중이라 내부는 전혀 볼 수 없었다.

그랜드토토 극락보전 내 삼존불과 탱화 [독자 백승호 씨 제공]
그랜드토토 극락보전 내 삼존불과 탱화 [독자 백승호 씨 제공]

극락보전과 함께 내부의 아미타 후불탱화, 벽화 등 모두가 보물 등으로 지정돼 법당 전체가 보물창고이지만, 볼 수 없는 아쉬움은 친구가 이전에 촬영한 한 장의 사진을 통해서나마 위로받았다.

내부 수리 중인 성보박물관
내부 수리 중인 성보박물관

따로 떼어내서 성보박물관에 전시돼 있다는 극락보전 내벽 사면 벽화라도 보고 싶었지만 굳게 닫힌 성보박물관을 모며 아쉬움을 추가할 수밖에 없었다.

그랜드토토 극락보전
그랜드토토 극락보전

유홍준 교수는 그랜드토토 극락보전을 “한적한 절집의 분위기에 척 어울리는 소담하고 검소하고 질박한 아름다움을 글로는 모두 전할 수 없을 정도”라고 극찬했다. 극락보전 보수공사가 완료되는 6~7년 뒤, 한적한 절집의 분위기를 탈피해 규모가 커진 그랜드토토에서의 극락보전은 어떤 모습으로 자리해 있을지 자못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랜드토토 삼층석탑
그랜드토토 삼층석탑

극락보전 앞마당에서 약간 비켜진 자리에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양식인 단아한 삼층석탑이 마당의 공허함을 메우고 있다.

그랜드토토 선각대사탑비
그랜드토토 선각대사탑비

극락보전 좌측 편에는 보물 제507호인 선각대사탑비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우람차게 서있다. 그랜드토토를 중창한 후삼국시대 승려인 형미대사를 기리는 탑비이다.

미륵전 마애 미륵불
미륵전 마애 미륵불

탑비 뒤 삼성각과 나란히 있는 미륵전에는 마애 미륵불을 모셔뒀다. 너무나 온화하고 정겨운 동네 아줌마의 형상을 보는 듯했다.

대적광전
대적광전

그랜드토토 제일 위쪽엔 최근에 낙성한 대적광전이 위풍도 당당하게 큰 규모로 자리하고 있는데, 아마도 극락보전을 대체해 그랜드토토의 중심 전각으로 기능을 할 듯하다. 400년 전 화마로 소실된 비로전 터에 건립한 것이라고 한다.

기암괴석의 형상은 월출산의 상징처럼 비치고 있지만 그랜드토토에서 바라보는 월출산은 완만한 능선으로만 감싸 안고 있는 모습이라 평온함을 준다. 그랜드토토 이름과 너무 어울리는 풍광이다.

월남사(지) 3층 석탑

그랜드토토 국립공원 표지석
그랜드토토 국립공원 표지석

그랜드토토를 나와 왼쪽 월출산을 타고 돌아가다 보니 백운동 원림(전시관)과 월출산 강진다원이 월출산을 뒷배경 삼아 자리하고 있다.

강진다원
강진다원

잠시 머물며 널따랗게 펼쳐진 초록빛 녹차밭의 시원한 풍광과 옛 선비들이 풍류를 즐겼던 별장 정원 정자에 기대앉아 땀을 식혀본다.

그랜드토토 등산코스인 금릉 경포대 계곡 초입에서 바라보는 그랜드토토은 천왕봉과 사자봉 암릉이 압도하듯 하늘로 솟구쳐 올라와 있어 그랜드토토 풍광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월남사(지)의 대웅전과 3층 석탑 [유튜브 채널 정용식의 사찰 기행 캡처]
월남사(지)의 대웅전과 3층 석탑 [유튜브 채널 정용식의 사찰 기행 캡처]

경포대 계곡 아래 자락에 임진왜란 때 전소돼 폐사된 것으로 알려진 월남사(지)가 있다. 이곳에서 보물급 문화재들이 발굴되다 보니 절터 복원작업이 한창인 듯 건물터를 구분해 정리하고 잔디를 심어 그랜드토토 아래 넓은 초원을 연상시켰다.

월남사(지) 3층 석탑 [유튜브 채널 정용식의 사찰 기행 캡처]
월남사(지) 3층 석탑 [유튜브 채널 정용식의 사찰 기행 캡처]

오롯이 그랜드토토 천왕봉 기운 받으며 벌판 속에 홀로 있었을 백제 양식의 3층석탑(보물)을 풍파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려는 듯 단출한 모습이지만 최근에 지은 대웅전이 그랜드토토과 3층석탑의 만남을 갈라놓고 있다.

월남사지 터는 아직은 잔디로만 구성돼 있어 그랜드토토 천왕봉과 도출된 암릉 등 아름다운 풍광이 그대로 한눈에 들어오고 새로 지은 전각들은 대웅전을 제외하고는 아래쪽에 배치돼 있다. 고려시대 월남사를 중창했을 ‘진각국사(1178~1234년)’ 비도 비록 머릿돌은 사라졌지만 진각국사의 기록이 남아있어 월남사의 역사를 증명하고, 여의주를 입에 문 거북(귀부)이는 무척이나 생동감 있는 모습으로 3층 석탑을 인근에서 지키고 있다.

그랜드토토와 월남사지 중간에는…

백운동 설명 표지판
백운동 설명 표지판

강진 여행에는 남쪽 바다도 좋고 남도 답사 1번지 답게 갈 곳이 넘치는 곳이지만 그랜드토토 자락에도 수려한 자연과 볼거리 역사 문화적 공간들이 많다.

월출산
그랜드토토

강진의 대표 사찰 그랜드토토에서 월남사지는 3㎞ 거리 차로 5분, 가까운 거리에 있고 가는 길목에는 호남 3대 원림이라는 백운동 원림과 드넓게 펼쳐진 녹차밭 월출산 다원, 그리고 월출산 최고의 계곡이라는 월출산 금릉 경포대 계곡이 있다.

담양의 소쇄원, 보길도의 세연정과 함께 호남의 3대 전통 정원으로 꼽히는 백운동 정원은 조선 중기 원주이씨 이담로(1627~1701년)가 들어와 계곡 앞 바위에 ‘백운동(白雲洞)’이라 새기고 별서 정원을 꾸민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백운동 원림과 백운첩 소개
백운동 원림과 백운첩 소개

소위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기 위해 만든 별장 같은 것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도 이곳에 들러 별장의 아름다움에 취해 제자인 초의선사에게 ‘백운동도’를 그리게 하고 12승경을 노래한 시문을 남겼고 이를 토대로 황폐해진 원림을 후대에서 복원하게 된 것이다.

백운동 12경 중 제12경 운당원
백운동 12경 중 제12경 운당원

십수 년 전 겨울에 이곳을 방문해 대나무 숲과 정원이 그랜드토토 기암괴석, 녹차밭 등과 어울려 감탄을 자아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별서 정원 11경이라는 정선대에서 바라보는 그랜드토토(옥판봉)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원림을 나오는 길에 마주하는 그랜드토토 자락 녹차밭은 그림 같았다. ‘백운동’이란 ‘그랜드토토에서 흘러내린 물이 다시 안개가 돼 구름으로 올라가는 마을’이라는데, 한여름 더위를 식혀줄 계곡의 물이 말라 있어 아쉬웠다.

백운동 12경 중 제9경 취미선방
백운동 12경 중 제9경 취미선방

숲길과 대나무밭 깊숙이 자리한 정원에는 정약용이 노래한 12경 표지판이 곳곳에 놓여있어 발길을 멈추게 하고 큰길가엔 후손들이 백운동 원림 기념관을 지어 그 역사를 되새기게 하고 있다.

그랜드토토 강진다원 소개
그랜드토토 강진다원 소개

그 바로 옆에는 그랜드토토을 배경으로 다원의 푸른 녹차밭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예전부터 녹차를 생산했던 이 지역에 1980년대부터 ㈜오설록에서 확장 개간해 약 33만㎡(10만평) 의 다원을 조성했다.

강진다원
강진다원

발이라도 담그며 더위를 식혀볼까 하고 경포대 계곡에 들어갔으나 때가 때인지라 사람들로 가득해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계곡물은 많지 않으나 깨끗하고 가족 단위의 피서객들이 어울려 쉬기에 적합해서인지 많은 이들이 찾은 듯 보인다.

월출산 경포대 계곡
그랜드토토 경포대 계곡

계곡 입구 쪽의 족욕장에 자리를 가득 채우고 한담하고 계시는 어르신들의 모습조차 한없이 부러워 보이는 삼복더위다. 금릉은 강진의 옛 이름이고 경포대는 강릉 경포대와 이름은 같지만 가운데 한자가 바닷가 포(浦)가 아닌 천(베) 포(布)를 써서 경포대(鏡布臺)라고 한다.

첩첩산중에 거울처럼 깨끗한 물이 비단처럼 흐른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는데, 지나오는 길에 ‘반값으로 강진으로 모신다’는 안내문이 보인다. 남도 답사 1번지답다.

글·사진 = 정용식 ㈜헤럴드 상무

정리 = 민상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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