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23회> 죽음의 계곡 25
호젓한 숲속에서 스무 살 처녀의 맨 젖가슴을 두 손으로 애무하는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다른 여자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이 한승우의 고질병이었다. 이를테면 너무도 다정한 것이 그의 병이란 뜻이다.
“이 실크 옷감 좀 만져보세요. 손끝이 살살 미끄러져요.”
한승우는 불현듯 지난해에 다녀온 베트남 여행을 떠올렸다. 베트남 내해에 머물던 크루즈 여객선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던가? 잠자리 날개처럼 얇은 비치웨어 차림의 신희영은 실크 옷감의 감촉을 핑계 삼아 한승우의 손을 자신의 젖가슴 위로 잡아끌었지. 그때의 탱탱한 느낌이 하필이면 이 순간에 오버랩 될 건 뭐람.
그날, 신희영의 손길을 뿌리친 까닭은 바로 유한솜과의 추억이 떠오른 때문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오늘은 유한솜과 뜨거워지려는 찰나에 신희영과의 추억을 되살리다니…. 마치 콜로세움 토토 술집 얘기하고, 술집에선 회사 걱정하는 3류 샐러리맨과 하등 다를 바 없었다.
“내 콜로세움 토토만 해줄 수 있냐고 물었어요.”
혀가 빠지도록 뜨거운 키스를 끝내자마자 그녀가 물었다. 어찌나 혀를 세차게 빨아대던지 한동안 턱이 얼얼해서라도 대답을 못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스무 살 시절의 입맞춤으로서는 훌륭한 상황이었다.
여러분들도 한 번 돌이켜 콜로세움 토토해 보시라. 스무 살 시절, 처음으로 딥 키스를 나누었을 때를…. 그때는 그저 상대방의 혓바닥을 뽑아내야 잘하는 짓인 줄 알았을 것이다. 만약 상대방의 혀를 입 속에서 살살 굴린 사람이 있다면 그는 보나마나 수업시간 내내 도색잡지, 혹은 빨간소설깨나 읽은 문제아였을 것이다.

“그야 물론이지.”
“그럼 다시….”
그녀가 이번에는 아예 몸을 돌려 앉은 채로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러더니 미처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또다시 그의 혀를 힘차게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역시 스무 살, 첫 경험임에 분명했다. 여리고 예쁜 처녀의 난폭한 키스는 한동안이나 지속됐다. 그녀는 체력장 시험을 치르듯 힘차게 그의 혀를 빨고 있었다. 그러나 한승우는 혓바닥을 빼 물린 채로 고민에 빠져 들어야만 했다. 모녀간의 사랑을 동시패션으로 받고 있으니… 이를 어쩌나.
예로부터 ‘다정도 병’이라 했다. 하지만 이런 경우, 너무 다정해서 병이라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단호한 태도를 취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병폐인 셈이다. 엄마냐, 딸이냐…, 다시 말해서 권력이냐 젊음이냐…. 욕심 많은 한승우로서는 둘 다 거절하기 어려운 까닭이었다.
내친 김에 ‘다정한 병’에 대해서 좀 더 고찰해 보기로 한다. 결혼해서 아이를 둘쯤 가진 경우의 남자에 한하는 경우지만, 어쨌든 들어두면 약이 될지도 모르겠다.
자고로 여자는 첫아이를 출산하면 모성애가 극도로 강해지게 된다. 달리 말하면 남편보다 자식을 더 소중히 여긴다는 뜻이다. 소중한 자식을 품에 안고 잠자려 하는데… 주책없는 남편이 옆구리를 찌르면서 자꾸 보채니 영 죽을 맛이다.
‘그래, 바람날까 무서워서 한 번 해 준다.’
모성애 강한 아내는 대충 이런 콜로세움 토토으로 상열지사에 응하는 것이다. 바람나는 게 뭐가 무섭냐고? 바람 자체가 무서운 게 아니라 돈이 다른 여자에게 새나가는 걸 무서워할 따름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남편은 ‘다정하게’ 상열지사에 임한다. 여기서 다정하다는 것은 헌신하는 자세를 뜻하는 것이다.
‘했어? 아직 안 했어?’
아내는 짜증스럽게 묻는다. 그러나 헌신적인 남편은 클리토리스, G-스폿 등등의 의학용어를 떠올리며 애처롭게 헌신한다. 그러니 남편들이여. 깨달을 지어다. 아무리 위로, 아래로 오르락내리락하며 애써본들 헛일이란 말이다. 아내 품 안의 자식은 떠오르는 태양이고, 그대는 지는 해일 뿐이니….
“다 했어? 조금 더 해?”
두 번째 키스가 끝나자 다정한 한승우는 얼얼한 입으로 이렇게 물어보아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