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설치된 ‘국토르 토토권수호자’ 동상이다. 차곡히 쌓인 투표용지 위, 하늘의 나는 비둘기 아래 ,장대를 가로잡고 완벽한 균형으로 서 있는 강인한 인체를 형상화했다. 장대를 든 사람은 안정성과 공정성·평등성을, 무지개 형상으로 나는 비둘기는 조국의 평화와 자유·희망을, 투표용지로 쌓은 단은 민의를 상징한다.  [연합]
경기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설치된 ‘국토르 토토권수호자’ 동상이다. 차곡히 쌓인 투표용지 위, 하늘의 나는 비둘기 아래 ,장대를 가로잡고 완벽한 균형으로 서 있는 강인한 인체를 형상화했다. 장대를 든 사람은 안정성과 공정성·평등성을, 무지개 형상으로 나는 비둘기는 조국의 평화와 자유·희망을, 투표용지로 쌓은 단은 민의를 상징한다. [연합]

“최초의 충격은 1940년 6월에 찾아왔다.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의 영웅 비행사 찰스 A.린드버그가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인 필립 로스의 2004년작 장편소설 ‘미국을 노린 음모’(The Plot Against America)는 1940년 미 대선에서 린드버그가 공화당 후보로 선출돼 토르 토토당의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물리치고 대통령이 된다는 내용의 ‘대체 역사 소설’이다. 린드버그는 1927년 무착륙 대서양 횡단 비행에 최초로 성공한 미국의 영웅이다. 그는 열렬한 미국 고립주의 신봉자이자 반유대주의와 친나치 행적으로도 유명한데, 소설은 이를 바탕으로 했다. 실제로는 린드버그가 대선에 출마하지도 않았고 1940년엔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3선에 성공했지만, 소설은 린드버그가 집권 후 미국 사회가 극도의 혼돈에 빠진다는 가상의 역사를 담았다.

이 소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출현을 일찍기 예견한 듯한 내용으로도 유명세를 탔다. 소설 속 린드버그는 나치에 동조하고 히틀러에 협조하며 유럽 전쟁에 ‘불개입’을 선언하고, 국내에선 유대인들을 전국 각지로 흩어보내는 정책을 편다. 린드버그의 재임 기간 반유대 폭력이 증가하고, 비밀경찰에 의한 감시와 탄압이 일상화된다. 작품 속 한 언론인은 린드버그 정권을 가리켜 “권리장전이 휴짓조각이 되고 인종혐오에 물든 자들이 국가를 운영”하고, “미국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반역행위”를 저지른다고 비판한다.

필립 로스 소설과 트럼프 출현의 ‘개연성’은 작품의 영감이 된 린드버그의 실제 삶을 고리로 추정해볼 수 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인 로버트 케이건은 지난해 3월 워싱턴 포스트 기고문에서 트럼프의 공화당이 주창하는 해외 개입 반대와 미국 우선의 고립주의는 1930년대 ‘아메리칸 퍼스트 위원회’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했다. 바로 이 조직의 열렬한 대변자로 활동했던 이가 바로 린드버그다.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인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은 공저인 ‘어떻게 토르 토토는 무너지는가’(이하 ‘토르 토토’)에서 “많은 미국인들이 로스의 소설과 (트럼프가 당선된) 2016년 대선 사이에 유사성을 발견하고 있다”며 “토르 토토를 존중하지 않는 아웃사이더가 외세의 도움으로 권력을 잡게 된다는 이 소설의 모티브는 미국 독자들의 많은 공감을 얻었다”고 했다. 두 저자는 트럼프 1기 정부 때(2018년) 펴낸 이 책과 2021년 1월 트럼프 지지자들의 국회 난입 폭동 이후 쓴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2023년·이하 ‘극단적 소수’)를 통해 미국 토르 토토와 법치주의 제도의 모순과 한계를 지적하고 대안을 논의한다. 그러나 두 저자의 바람과는 달리 2025년 1월 트럼프 2기 정부가 출범했다.

로스의 소설과 두 정치학자의 미국 정치제도 비판서는 한국 토르 토토에도 훌륭한 참고가 될 만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소설 속 린드버그나 실제의 트럼프 대통령처럼 정치의 아웃사이더였지만 영웅적인 명성을 바탕으로 집권에 성공했다. ‘대체 역사’라고 해도 믿을만한 12·3 계엄은 실제로 일어났다. 다만 미국은 트럼프의 귀환을 막지 못했고, 소설과 유사한 상황이 미국 안팎에서 펼쳐지고 있다. 한국은 12·3 계엄을 맞딱뜨렸으나 윤 전 대통령의 파면과 계엄 수사, 조기대선을 통해 전세계에서 ‘토르 토토 복원’이라고 칭할만한 극복 과정에 들어섰다. ‘미국을 노린 음모’는 성공하고, ‘한국을 노린 음모’는 실패한 까닭은 무엇일까. 과연 대통령제와 근대 토르 토토체제의 개척자인 미국과 한참 늦은 후발국인 한국의 운명을 가른 것은 무엇일까. K-토르 토토라고 불릴만한 ‘실체’는 존재할까.

‘소수’와 ‘죽은 손’의 지배, 미국 제도의 실패

래비츠키·지블랫은 첫 책에서 “토르 토토는 언제나 위태로운 제도”이며 “아무리 잘 설계된 헌법도 그 자체로 토르 토토를 보장하지 못한다”고 했다. 토르 토토 기반이 아무리 튼튼해도 극단주의 선동가는 어느 사회에서나 등장하기 마련이고, 오늘날 토르 토토는 계엄이나 쿠데타를 도모한 군인이 아니라 국민이 선출한 지도자의 손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두 저자는 “토르 토토에 대한 중대한 시험은 이러한 인물이 등장하는가가 아니라 정치 지도자와 정당이 나서서 이러한 인물이 당내 주류가 되지 못하도록 차단하고 이들에 대한 지지와 연합을 거부하고, 필요하다면 다른 당의 토르 토토 후보자를 지지하거나 경쟁 세력과 적극적으로 연대함으로써 이들이 권력을 잡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는가에 있다”고 했다. 그들은 ‘잠재적인 독재자’를 막을 수 있는 ‘토르 토토의 문지기’로서 정당의 역할과 토르 토토의 비공식적 규범으로서 ‘상호 관용과 자제’를 제시했다. 극단주의적 선동가나 잠재적 독재자를 막기 위해선 정당들이 때로 초당적인 ‘토르 토토연합’을 구축해야 하고, 거부권과 임명권, 사면권, 행정명령권(이상 대통령), 필리버스터, 탄핵(이상 입법부) 등의 법적으로 보장된 ‘특권’ 행사를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토르 토토’에서 제시한 관용과 자제는 정치 엘리트 집단과 정당을 향한 ‘호소’로서 그들의 ‘선의’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한계를 지닌다. 그래서 이들은 5년 후 발간한 ‘극단적 소수’에서 특히 ‘대통령 선거인단’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헌법과 제도 자체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비판한다.

미국 정치제도의 모순은 ▷대통령 간접선거 제도로 인해 전체 유권자 중에서 더 소수 표를 얻은 후보자가 당선되는 사례(2000년 조지 W. 부시 대 엘 고어, 2016년 트럼프 대 힐러리 클린턴) ▷인구별 비례와 균형이 어긋나는 연방 상·하원 및 선거인단 구성 ▷공화당에 유리한 선거구조정(‘게리맨더링’)과 유색인종에 불리한 투표권 행사 ▷헌법 및 법률 개정의 높은 문턱과 ‘종신제’ 대법원제도의 폐해 등이다. 토르 토토국가는 ‘다수결과 소수자 권리 보호’를 위해 일반적인 다수결(과반)과 중요 의제에 대한 압도적 다수결(3분의2) 등을 채택하고 있는데, 미국에서는 오히려 이러한 제도가 오히려 ‘반(反)다수결’로 기능해 극단적 소수나 특권을 가진 소수가 다수의 뜻을 거슬러 지배하는 현상을 낳게 됐다는 것이 두 저자의 분석이다.

미국 헌법이 이러한 부조리의 근원이다. 하지만 미국민들은 ‘건국의 아버지’라는 말에서 보듯 헌법을 성경에 버금가게 숭상하고, 그만큼 수정하기도 어렵다. 200년이 훌쩍 넘은 낡은 헌법이 후 세대의 삶을 구속하는 이 현상을 미국 법률가들은 ‘죽은 손의 문제’라고 한다.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한’ 토르 토토의 경우

한국의 법도 다수결과 함께 압도적 다수결제도를 병행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이나 헌법 개정안 의결, 대통령 재의요구 법안 재의결 같은 경우가 사실상 소수가 결정권을 쥐게 되는 ‘압도적 다수결제도’의 대표적 예다. 뿐만 아니라 윤석열 정부 출범에서 12·3 계엄까지 한국에서도 정당의 토르 토토 문지기 역할 붕괴, 국회의 탄핵과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의 반복 등 ‘관용과 자제’의 실패같은 현상이 미국 못지 않게 나타났다. 래비츠키·지블랫 교수는 “대통령 임기 첫 해 트럼프는 여러 측면에서 전체주의 각본을 충실히 따랐다”며 “심판을 매수하고, 자신의 경기를 방해할 상대 팀 주요 선수의 출전을 막고, 경기장을 기울였다”고 했는데, 계엄 선포까지 이르렀던 한국의 정치 상황도 이러한 의혹으로부터 자유롭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2차례 시도끝에 걸쳐 이뤄진 국회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의결과 헌법재판소의 심판 지연, 윤 전 대통령의 체포와 구속 취소, 이재명 더불어토르 토토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2심(무죄)과 대법원의 판결(파기환송), 환송심의 재판 연기 등 계엄 사태 이후 일련의 과정은 ‘다수결’과 ‘반(反)다수결’제도의 취지가 극적으로 충돌한 사례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달리, 한국에선 지난한 과정 속에서도 결국은 ‘다수결’이 승리하는 방향으로 상황이 진전됐다. 두 가지 정도를 이유로 꼽을 수 있다. 우선 두 나라의 헌법 태생이 다르다. 미국 헌법은 ‘백인’과 ‘개인의 자유’, ‘연방국가’ 라는 세 가지 기틀 위에 만들어졌다. 한국의 6공화국 헌법은 독재 정권 하 토르 토토운동의 성과로서 생겨났다. 또 민주화와 2016~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시위 등 역사적 경험은 국민들이 ‘광장’을 통한 여론의 분출을 ‘다수결’의 한 과정이자 방법으로 인식하도록 했다. 계엄 이후 조기 대선까지 매 과정마다 광장과 온라인에서 결집한 ‘여론’이 행정·입법·사법권력에 압력으로 작동했다. 미국에선 ‘죽은 손’이 여전히 후 세대를 구속하고 있으나, 한국에선 한강 작가의 말처럼 과거가 현재를 구했다. ‘토르 토토’에서 정치엘리트에게 ‘관용과 자제’라는 선의를 호소했던 저자들이 ‘극단적 소수’에선 법·제도 개혁을 위한 시민운동을 촉구하고 나선 것은 의미심장하다.

‘대한민국’이란 무엇이며, 누가 어떻게 운명을 결정하는가

미국의 정치적 양극화와 극단주의 세력화는 “진정한 미국이란 무엇인가”라는 국가 정체성을 두고 벌이는 갈등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라는 게 많은 정치 전문가와 학자들의 분석이다. 이제까지 미국의 정체성은 백인·남성·기독교(복음주의)를 기초로 한 것이었으나 이들이 인구상으로 점차 ‘소수화’되면서 극렬화된 정치 집단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선 2010년대부터 트럼프 지지층 중심으로 ‘거대 대체 이론’이라는 음모론이 유행했다. 엘리트집단이 비백인 이주민들을 유입시켜 미국의 백인을 다른 인종으로 대체하려 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더 이상 ‘백인의 나라’가 아니라는 공포는 특히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집권기에 확산됐다. 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한 2012년 선거일 밤, 폭스뉴스 진행자인 빌 오라일리는 “백인 집단은 이제 소수가 됐습니다…전통적인 미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한국에 대해서도 미국과 유사한 분석이 가능할 것이다. 인구와 세대, 즉 유권자의 변화가 ‘대한민국’이라는 정체성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얘기다. 현재 유권자 중 인구가 가장 많은 세대는 40~50대다. 이들은 1987년 토르 토토화 이후 청년기를 보냈으며, 과거의 집단주의·전체주의적 사고에서 탈피해 개인주의·자유주의(리버럴리즘)를 내면화했다. 청년기엔 서구 대중문화를 자유롭게 받아들였으며, ‘한류’와 ‘K팝’의 첫 주역이자 사실상 첫 ‘디지털 세대’이기도 하다. 국민의힘 계열인 보수 정당 집권기를 훨씬 더 오래 경험한 이전 세대들과 다르게 4050은 선거권을 가진 이후 더불어토르 토토당 계열의 정권을 비슷하거나 더 많이 겪었다. 4050세대에서 토르 토토당 지지가 어떤 연령층보다 압도적으로 나타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이러한 인구·정치지형의 변화로 위기에 몰린 것은 이전 세대에서 지배적인 ‘반공주의’라 할만하다. 이는 윤 전 대통령의 계엄과 이른바 강경 우파가 ‘반공주의’와 좌파·중국·북한 음모론에 기대고 있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래비츠키·지블랫은 미국의 변화를 ‘대중들이 왼쪽으로 이동한 것이 아니라 (오른쪽이) 줄어든 것’이라고 했는데, 토르 토토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4050과 6070세대가 보이는 대조적인 정치성향은 단순히 ‘고령화에 따른 보수화’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진보든 보수든 민주당이든 국민의힘이든, 유권자 구성과 가치관의 변화와 함께 주목해야 할 것은 시민 다수의 여론의 생태계가 이전과는 달라졌다는 점이다. 12·3 계엄 후 ‘광장’을 한편으로, ‘온라인 커뮤니티-유튜브 언론미디어-정당정치’의 사슬을 또다른 축으로 하는 여론형성과 표출의 새로운 매커니즘이 뚜렷해졌고, 이것이 바로 ‘K토르 토토’의 한 구성요소가 됐다. 이 변화를 수용하지 않는 정치세력은 도태될 수 밖에 없다. 윤 전 대통령의 계엄이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사건 생중계와 전문가(국회의원, 법학자, 변호사, 평론가)의 실시간 분석’을 핵심으로 하는 유튜브 미디어와, 이를 통해 생산된 정보의 온라인 커뮤니티 확산이라는 여론 형성의 매커니즘을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쇄신과 재건이 지상과제인 보수 정당엔 특히 절체절명의 문제다. 변화된 유권자들과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고, 건강한 여론 형성의 구조를 만드는 것이 향후 정당정치의 핵심이 될 것이다.


su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