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토토사이트…공공미술로 변곡점 맞아

‘거장’ 문 빅토르 화백 “지금의 한국에 감사해”

스포츠토토사이트종합지원센터·문빅토르미술관 외벽에 설치된 ‘1937 강제이주열차’ [자료=광산구]
스포츠토토사이트종합지원센터·문빅토르미술관 외벽에 설치된 ‘1937 강제이주열차’ [자료=광산구]

[헤럴드경제=서정은 기자] 광주 광산구 월곡동 스포츠토토사이트. 고려인이 모여 사는 지역은 인천 등 여러 곳이 있지만 ‘마을’ 이름이 붙은 건 이 곳이 유일하다. 그만큼 고려인의 국내 정착에 있어 상징과 같은 곳이 됐다.

‘스포츠토토사이트’이라는 명칭이 공식화 될 수 있었던 것은 유독 이 곳의 공동체 활동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어서다. 스포츠토토사이트에선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당시 현지 동포와 피난민들을 위해 대대적인 모금 운동을 펼쳐 10억원의 후원금을 모으기도 했다. 척박한 환경에서 집단생활로 역사의 아픔을 살아낸 ‘삶의 비결’이 광주에서도 꽃핀 것이다.

신조야 스포츠토토사이트 대표는 “처음에 왔을 때만 해도 고려인은 나 하나였지만, 지금은 한국에 정착하고 은 동포들이 전화로 물어볼 정도로 대표적인 고려인의 거주지”라고 말했다. 이 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마을 커뮤니티에서 차, 간식 등을 제공할 정도로 소통도 활발하다.

마을 안에는 스포츠토토사이트종합지원센터, 스포츠토토사이트진료소, 어린이집 등을 갖추고 있다. 이 덕에 주민들 연령대도 다양해 저출생 시대에 인구가 꾸준히 늘어나는 중이다. 배일섭 공공미술공동체 대표는 “평일 낮에는 젊은 부부들이 출근을 했기 때문에 어르신들을 주로 볼 수 있지만, 오후부터는 분위기가 확 바뀐다”며 “역사적 아픔이 있어 사건사고가 나지 않도록 더욱 조심하는 편”이라고 전했다.

광주 스포츠토토사이트의 중앙공원에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설치돼있다. [서정은 기자]
광주 스포츠토토사이트의 중앙공원에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설치돼있다. [서정은 기자]

스포츠토토사이트이지만 중앙아시아에서 넘어온 고려인 뿐 아니라 국내에 정착한 여러 외국인들도 이 곳에 산다. 때문에 식당가의 모습도 러시아, 중앙아시아 스타일이 뒤섞여 다채롭고 이국적이다. 한국인의 얼굴을 하면서도 타국어를 구사하는 고려인들처럼, 익숙함과 이질감이 공존하며 주거지와 관광지 그 중간의 생태계를 이루며 활력을 더하고 있다.

스포츠토토사이트 정체성 담아낸 작품 곳곳에…“이제는 비상한다” 희망 담은 강제이주열차

무채색이던 스포츠토토사이트은 지난해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만나 한 차례 도약했다. 광산구가 중앙아시아 역사를 담은 마을을 조성하는 작업에 나서면서 마을에 색채가 더해진 것이다.

2024년 6월부터 6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스포츠토토사이트에는 총 27명의 작가·감독 등이 모였다. 이들은 고려인들의 이야기를 건물 외관, 전봇대, 벤치, 나무 등에 각종 조형물, 모자이크타일 등 여러 형태로 담아냈다. 고려인들의 삶이 공공미술을 만나면서 이곳은 광주를 대표하는 풍경이 됐다.

공원공연장 조형물 [서정은 기자]
공원공연장 조형물 [서정은 기자]

특히 공원 공연장에 설치한 ‘스포츠토토사이트사람(kope-capam)’이라고 적힌 조형물이나 3·1독립운동기념문을 본뜬 공원게이트 조형물은 이들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전봇대에는 다양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나 각종 중앙아시아 무늬가 새겨져있다.

스포츠토토사이트 대표하는 인물로는 문빅토르 화백이 있다. 1951년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에서 태어난 그는 고려인의 후손으로 영구 귀환해 이 마을에서 살고 있다. 고려인들의 아픔과 희망을 담은 작품을 만드는데 고려인종합지원센터와 문빅토르미술관 외벽에 설치된 ‘1937년 강제이주열차’는 이들에게 자부심 그 자체다.

이 열차는 스탈린에 의해 강제로 이주당한 ‘스포츠토토사이트 디아스포라(특정 민족이 다른 지역에서 집단을 형성하는 것)’의 아픔을 담았다. 1931년 스탈린은 일본군과 구별되지 않는다며 스포츠토토사이트들을 척박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켰다. 지식인들은 처형하고, 나머지는 화물차와 가축운반차를 개조한 차량에 등떠밀리듯 탔다.

문빅토르 화백 [자료=광산구]
문빅토르 화백 [자료=광산구]

문 화백은 어머니로부터 들은 기억을 더듬어 검은색 철제 위를 달리는 이 작품을 구상했다고 했다. 문 화백의 손 끝에서 비극의 열차는 터널을 탈출해 날아오르는 ‘희망의 열차’로 전환됐다. 문 화백은 최근 정복을 입고 훈장을 단 홍범도 장군의 모습을 담아낸 작품을 공개하기도 했다. 고된 삶을 보낸 홍 장군의 영예를 되찾아주고 싶었다고 했다.

문 화백은 “아들인 내게 이야기하는 어머니조차도 세상이 무서워 그 시절 얘기를 제대로, 크게 하지 못했다”며 “같은 일을 해도 스포츠토토사이트들은 인정받지 못했던 그런 아픔을 위로해 주고 싶어 40대의 젊은 홍범도 장군의 얼굴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문화백은 아직 한국어가 서툴고 느리다. 하지만 “한국에 오지 못하고 러시아 등지에서 살아남았다면 그 자체로 끔찍했을 겁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그대로 너무 좋아요” 라고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lucky@heraldcorp.com